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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년 김성탁(金聖鐸) 위장(慰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741.4717-20110630.00902570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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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위장
작성주체 김성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41
형태사항 크기: 32.1 X 55.2
장정: 점련
수량: 2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1년 김성탁(金聖鐸) 위장(慰狀)
1741년(영조 17) 9월 1일에 김성탁이 보낸 위문편지이다. 김성탁광양으로 이배되어 있던 중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른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상대는 건강이 좋지 못하여 늘 조섭 중에 있었는데 지나치게 슬퍼한다면 효자가 몸을 온전히 하는 도리가 아닐 것 같다고 하면서 자애하기를 당부하였다. 자신은 모친의 장사를 치르고 곧장 배소로 돌아갔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곳이면서도 직접 나아가 위문하지 못하였고, 도착해서는 인편이 오랫동안 막혀서 위장도 뒤늦어졌다고 하면서, 평소 정의에 비추어 잘못이 크다고 하였다. 이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지도 못했는데 흉한 기별이 갑자기 이르니 매우 애통하다고 하였다. 3월 이후 중풍이 다시 발작하여 거동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소식을 얻지 못하여 장삿날을 언제 잡았는지도 몰랐는데, 기중이 들른 것으로 인하여 이미 장사를 치렀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또한 기중이 상대가 너무나 건강을 상하였다고 하니, 더욱 심하게 걱정되었다고 하였다.
김선주

상세정보

1741년 9월 1일, 김성탁이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른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위문편지
내용 및 특징
1741년(영조 17) 9월 1일에 霽山 金聖鐸(1684-1747)이 보낸 위문편지이다. 김성탁제주도에서 육지인 광양으로 이배되어 있던 중 모친상을 당하게 되었는데, 당시 좌의정宋寅明의 요청으로 말미를 얻어 돌아와서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이 편지는 그 직후에 작성된 것이다. 이 편지는 김성탁이 상대에게 보낸 慰狀과 이에 점련된 또 하나의 위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취인은 동일인으로 보인다.
먼저 위장은 김성탁이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른 상대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상대는 건강이 좋지 못하여 늘 조섭 중에 있었는데 지나치게 슬퍼한다면 효자가 몸을 온전히 하는 도리가 아닐 것 같다고 하면서 자애하기를 당부하였다. 그런데 柳正字의 편지를 통해서 상대가 평안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근심스러운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하면서, 억지로라도 죽을 드시라고 하였다. 김성탁 자신은 모친의 장사를 치르고 곧장 配所로 돌아갔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곳이면서도 직접 나아가 위문하지 못하였고, 도착해서는 인편이 오랫동안 막혀서 위장도 뒤늦어졌다고 하면서, 평소 情誼에 비추어 잘못이 크다고 하였다.
점련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적혀 있다. 쇠약한 나이에 병을 무릅쓰고 잠자리를 함께 하며 단란하게 지냈던 즐거움은 근래 있지 않았던 다행스런 일이었다고 했다. 더구나 서늘한 가을에 浮石寺에서 노닐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열흘도 못되어 갑자기 각자 멀리 떨어지게 되었으니 노년의 인사가 어찌 이리도 기약할 수 없느냐고 하였다. 또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지도 못했는데 凶報가 갑자기 이르니 매우 애통하다고 하였다. 3월 이후 風痺가 다시 발작하여 거동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소식을 얻지 못하여 장삿날을 언제 잡았는지도 몰랐는데, 企仲이 들른 것으로 인하여 이미 장사를 치렀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또한 기중이 상대가 너무나 건강을 상하고 두 번이나 피를 쏟았다고 말하였으므로, 더욱 심하게 걱정되었다고 하였다. 疏食이라도 들어서 보중하기를 신신당부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41년 김성탁(金聖鐸) 위장(慰狀)

聖鐸 稽顙再拜 不意凶變
先府君奄
違色養 承
訃驚怛 不能已已 伏惟
孝心純至 思慕號絶 何可堪居 日月不居 奄經
襄奉 哀痛奈何 罔極奈何 罪人 伏念
哀氣力 素不充健 常在調養中 今此
斬焉在疚 若不留意毁滅之戒 過於致哀 則恐非
孝子全生之道 況
哀自平日忠養 以至色憂嘗藥之際 無所遺憾於人子之職 其視
不孝 罪逆抱窮天之至痛者 萬萬不侔矣 罪人尙不敢自棄其身
苟延其命
哀豈可不自愛惜耶 今因柳正字書 伏審
哀體方不安 其於瞻想 不任憂歎 伏乞
强加餰粥 俯從先王之制禮焉 聖鐸 歸葬事畢 卽復還配
咫尺之地 無暇奉慰 及到天涯 家便久阻 一疏替慰 亦此後時 此
其於平素情誼 欠負多矣 且悲且媿 無以爲喩 餘 謹奉疏
荒迷不宣 謹疏
辛酉九月初一日 罪人 金聖鐸 疏上
柳生員 大孝哀前
衰年力疾 得遂聯枕團欒之樂 此實近來所未有之幸會 而
且幸有秋凉 石寺之便 臨別慇懃 不翅再三 而曾未旬月 遽抱
各天之悲 老境人事 若是其不可期耶 背面依依 唯以後期爲幸
猶行遲遲 而不聞病革之報 道人自何上來 爲問近候之各如何
而凶奇遽及 痛矣痛矣 人世固草草 豈意壽齋握手 竟是永訣之日也 痛
矣痛矣 三月以後 風庳復作 轉仄須人 且候其不得消息 未知襄奉竟
卜何時 昨昨 企仲過訪 聞已經襄奉 萬事已矣已矣 固知病孱之喘 亦
是朝暮之人 斯須之悲 固知其良益 而尤不能爲懷耳 企仲
哀柴毁太甚 再有吐血之症 憂戀更深 久知
哀至孝純心 無所不至 自不覺致傷之至此 而友朋之望於
哀者 爲不淺 哀豈不知 無孝之非 聖人所訓 況平日非疾之念 想
不以幽明而有間 哀又不可不思其至 而猛情直行也 幸勉加疏食
保嗇遺體 以慰友朋憂愛之望 至祝至祝 病中 不能作楷字 而悲念
之至 畧此貢慮 千萬俯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