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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 김도흠(金道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739.4717-20110630.0090257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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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도흠, 김성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39
형태사항 크기: 33 X 45.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39년 김도흠(金道欽) 서간(書簡)
1739년(영조 15) 5월 19일에 김도흠김성탁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도흠은 숙모님께서 1년 동안 철따라 강녕하시고, 조카 분행의 아이가 지난달에 마마에 걸렸으나 잘 치러냈으므로 다행이나 김성탁의 부인인 종수씨가 봄 초에 돌림병을 앓고 아직 소생하지 못하였다고 하므로 이 때문에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지난겨울에는 개령 종고모님의 상을 당하였고, 올봄에는 나천 종형님의 상을 당했다고 하였다. 김성탁이 아주 먼 곳에서 귀양을 사는 신세로 지친의 상을 연달아 당하였으니 비통한 마음이 간절할 것인데, 이를 어찌 감내하느냐고 하였다. 자신의 신병이 근래 조금 덜해졌는데 1년 동안 분주히 우거하다가 4월에 비로소 돌아와 다행스럽지만 더운 철을 맞아 온갖 질병이 발작하니 진실로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이 지은 약간의 시로 김성탁이 근심을 푸는 여부는 모두 김성탁이 보기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추신에서 오언시와 칠언시 한 수를 써 놓았다.
김선주

상세정보

1739년 5월 19일, 김도흠이 상대 집안의 근황을 알리고 시를 부치기 위하여 김성탁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9년(영조 15) 5월 19일에 月峰 金道欽(1695-1756)이 霽山 金聖鐸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도흠은 자가 行彦이고, 본관이 義城으로, 孤山 金恒重의 아들이다. 그는 제산 김성탁의 再從弟가 된다. 저서에 詩稿가 있다. 피봉의 ‘光陽謫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에 김성탁제주旌義縣에서 광양蟾津으로 이배되어 있었다.
김도흠은 숙모님께서 1년 동안 寓所에 계시지만 철따라 강녕하시고, 조카 賁行의 아이가 지난달에 마마에 걸렸으나 잘 치러냈으므로 다행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성탁의 부인인 從嫂氏가 봄 초에 돌림병을 앓고 아직 소생하지 못하였다고 하므로 이 때문에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지난겨울에는 開寧 從姑母님의 상을 당하였고, 올봄에는 羅川 從兄님의 상을 당했다고 하였다. 김성탁이 아주 먼 곳에서 귀양을 사는 신세로 지친의 상을 연달아 당하였으니 비통한 마음이 더욱 간절할 것인데, 이를 어찌 감내하느냐고 하였다. 종형의 묏자리는 비록 큰 안목을 가진 사람이 정한 것이지만 같은 산이라도 상하의 차등이 있으니 이 자리는 이전의 사람이 봐놨던 곳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자신이 다시 가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나 痘虎가 길을 막고 있기에 그러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김도흠은 자신의 신병이 근래 조금 덜해졌으나 때때로 餘症이 발작하는 근심이 있으니 이 병이 장차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1년 동안 분주히 우거하다가 4월에 비로소 돌아왔으니 다행스럽지만 더운 철을 맞아 온갖 질병이 발작하니 진실로 고통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이 지은 약간의 시로 김성탁이 근심을 푸는 여부는 모두 김성탁이 보기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추신에서 오언시와 칠언시 한 수를 써 놓았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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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39년 김도흠(金道欽) 서간(書簡)

兄主前 謹拜上候狀
光陽謫所 入納
春末夏初 連有便信 而未能一字以候
迨深愧恨 一書 千里遠及 此際 忙手啓
玩 不啻千金 感佩之餘 旋切罪歎 憑
審夏炎
客中體候 連享萬安 遠慰無任 伊
後有日 更若何 馳慮不已 無窮者情也
此中 叔母主氣候 雖一年在寓中
對時康寧 侄之兒子 去月染痘順
經 是所幸也 慰賀萬萬 而尊賢閤從
嫂氏 春初 重患輪症 尙未蘇云 爲之
慮也 數年來 是何厄運也 宗喪未
畢 而去冬 遭開寧從姑母主喪 今春
又哭羅川從兄主喪 痛哭痛哭以外 天涯
羈旅客 連遭至親喪 愁鬱之餘
悲痛之懷益切 何以堪抑耶
從兄葬山所定 雖是大眼目所打者 然一山 亦
有上下異等 則此穴 與前人所見處不同 上有
黃泉來 而此□下不然 可以用之矣 弟非不欲
更往見之 而痘虎塞道 姑未果焉 而聞
英陽兄主 以先營對□ 有難意云 則弟
之看尋所定處 恐有所未安也 所敎如
是 不見之意 果是弟之過慮也 早晩往
占是計 從弟身病 近
得少歇 而時有餘症 發作
之患 此疾將殺人矣 此
生良可憐也 一歲奔寓
四月始還 是幸 而時當炎
節 百疾猶發 苦憫苦憫
近來絶不上一首詩 蓋有
昔者走避密翁 今者又
走避吾兄之譏 故有
作而不敢發也 所示中 有
欲解愁鬱之命 敎之以
詩爲嫌 其譏不爲也 則是鄕題
爲我兄耶 以
若干詩 以奉解愁與否 都
在盛覽 而弟之取譏 亦不
小也 可笑可愧耳 餘不備 伏惟
兄下察 謹拜狀上
己未五月十九日 從弟 道欽

相離今幾歲 鬱鬱我懷長 路遠家千里 情深雁一行
作賦投湘水 題詩寄夜郞 聞道酸辛苦 應知鬢滿霜
孤臣囚絶域 佳句柒華牋 舊友行稀少 新交勤接聯
瘴海愁慰鵩 炎天畏跕鳶 應知深意苦 莫使衆人傳
宣室求賢訪價(賈)生 中年前席竟爲榮
明王正想文皇事 幸得何時尋我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