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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 김경항(金景沆) 외 8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F.1738.4717-20110630.00902570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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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경항, 김경잠, 김경한, 김경헌, 김경오, 김경점, 김경학, 김태채, 김용채, 김성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38
형태사항 크기: 40 X 58.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38년 김경항(金景沆) 외 8인 서간(書簡)
1738년 3월 9일, 김경항 등이 유배 중 안부를 묻고 무명을 보내기 위해 김성탁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들은 김성탁이 杖을 맞은 곳에 고름이 낫다는 소식을 다른 데를 통해 들었다고 하면서 그 상처가 아물었는지 물었다. 종가의 김민행이 사망하였으므로 슬픈데 하물며 상대의 처지이겠느냐고 했다. 자신들은 한 집안사람으로서 위리 안치된 상대를 위하여 다른 친지들에 비해 마음 아픔이 각별하지만 각자 집안일에 매여 있었고 또한 궁한 형편 때문에 아직까지 물품을 보태주지 못하였다고 했다. 늘 마음이 걸려 있던 중에 이제야 약간을 모아 무명 1필을 사서 보낸다고 했다. 끝으로 풍토병을 조심하고 식사를 잘하기를 기원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738년 3월 9일, 김경항 등이 유배 중 안부를 묻고 무명을 보내기 위해 김성탁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8년(영조 14) 3월 9일에 金景沆 등이 유배 중 안부를 묻고 무명을 보내기 위해 霽山 金聖鐸(1684-1747)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인 김경항·金景潛·金景漢·金景瀗·金景澳·金景漸·金景㶅·金兌采·金龍采는 모두 의성김씨 문중의 인물들인데, 김경잠·김경한·김경헌·김경점 등은 八吾軒 金聲久의 손자들이다. 이 편지는 김성탁제주도旌義縣에 안치되어 있을 당시에 작성된 것이다.
이들은 김성탁이 杖을 맞은 곳에 고름이 낫다는 소식을 다른 데를 통해 들었다고 하면서 그 상처가 아물었는지 물었다. 宗家의 金敏行이 환난의 즈음에 사망하였으므로 통석한 정이 더욱 깊어지거늘 하물며 김성탁의 처지이겠느냐고 했다. 김민행김성탁의 사촌형인 金之鐸의 아들로, 곧 靑溪 金璡의 종손이다. 자신들은 宗黨에 속한 자들로서 위리 안치된 김성탁을 위하여 傷歎하는 마음이 다른 친지들에 비해 각별하지만 각자 喪事에 매여 있었고 또한 궁한 형편으로 인해서 아직까지 물품을 보태주지 못하였다고 했다. 늘 마음속에 이것이 걸려 있던 중에 이제야 약간을 모아 이로써 무명 1필을 사서 보낸다고 했다. 끝으로 풍토병을 조심하고 식사를 잘하기를 기원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서압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9번에 걸쳐 줄을 바꾸거나 극행을 올리고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38년 김경항(金景沆) 외 8인 서간(書簡)

金校理 匪所 入納
虎坪 宗中 候狀[署押]
▣久曠 音問且疎 望雲懷緖 想
▣排抑 尤覺哽咽 轉聞杖處 有
成膿之漸云 未知已向完合之境 而
興居鼎茵 能得神衛否 善伯宗兄 不淑
於患難之際 痛惜之情 愈久彌深 矧惟
吾兄心乎 弟等 忝在宗黨之後 爲吾兄傷
歎之心 豈比尋常親知 而各汨喪禍 又迫窮計
尙不得以絲毫之物 仰補靖廚炊爨之資 居
常歉恨 若魚中鉤 今始零星收拾 貿一疋木
以呈 薄略可愧 固知
平日充養之力 不以患厄 而有所損奪 幸須
愼水土加餐飯 使我輩 復見勝昔之髭髮
唯是之祝 餘萬 不宣 伏惟
崇照 謹候上狀
戊午三月九日 宗末 金景沆 景潛 景漢 景瀗 景澳 景漸 景㶅 兌采 龍采 等頓

弟 前有候字 果得
關照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