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8년 3월 9일, 김경항 등이 유배 중 안부를 묻고 무명을 보내기 위해 김성탁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38년(영조 14) 3월 9일에 金景沆 등이 유배 중 안부를 묻고 무명을 보내기 위해 霽山 金聖鐸(1684-1747)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인 김경항·金景潛·金景漢·金景瀗·金景澳·金景漸·金景㶅·金兌采·金龍采는 모두 의성김씨 문중의 인물들인데, 김경잠·김경한·김경헌·김경점 등은 八吾軒 金聲久의 손자들이다. 이 편지는 김성탁이 제주도旌義縣에 안치되어 있을 당시에 작성된 것이다.
이들은 김성탁이 杖을 맞은 곳에 고름이 낫다는 소식을 다른 데를 통해 들었다고 하면서 그 상처가 아물었는지 물었다. 宗家의 金敏行이 환난의 즈음에 사망하였으므로 통석한 정이 더욱 깊어지거늘 하물며 김성탁의 처지이겠느냐고 했다. 김민행은 김성탁의 사촌형인 金之鐸의 아들로, 곧 靑溪 金璡의 종손이다. 자신들은 宗黨에 속한 자들로서 위리 안치된 김성탁을 위하여 傷歎하는 마음이 다른 친지들에 비해 각별하지만 각자 喪事에 매여 있었고 또한 궁한 형편으로 인해서 아직까지 물품을 보태주지 못하였다고 했다. 늘 마음속에 이것이 걸려 있던 중에 이제야 약간을 모아 이로써 무명 1필을 사서 보낸다고 했다. 끝으로 풍토병을 조심하고 식사를 잘하기를 기원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서압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9번에 걸쳐 줄을 바꾸거나 극행을 올리고 대두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