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9년 11월 12일, 이세원이 근황을 전하고 손자며느리의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손자를 보냈음을 알리기 위해 김성탁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29년(영조 5) 11월 12일에 李世瑗(1667-1741)이 근황을 전하고 손자며느리의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손자를 보냈음을 알리기 위해 霽山 金聖鐸(1684-1747)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세원은 자가 景玉, 본관이 廣州로, 副校理李漢命의 아들이며 判書李元禎의 손자이다. 생원시에 입격하고, 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특히 玉川 趙德鄰 등이 그의 지혜와 재주, 인자함에 대해서 극찬한 바 있다. 그의 손자인 李東英(1710-1797)은 바로 수취인 김성탁의 사위이다. 이동영은 義城金氏와 혼인하여 黙軒 李萬運을 낳았다.
이세원은 지난번 김성탁의 노비가 돌아가는 편에 부쳤던 답장을 보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겨울 날씨가 따뜻한 요즘 기거가 어떠하며 兩所의 병환이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이세원 자신은 여전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고, 아이의 到門宴은 8일에 무사히 치렀다고 했다. 이는 이세원의 아들인 李達中이 식년 생원시에 입격한 일과 관련된 것이다. 손자며느리가 앓고 있는 눈병의 차도는 어떠하며, 약효가 과연 있는지 물었다. 손자를 보내서 상세히 증후를 살펴서 자세히 적어 오게 하여 널리 자문하여 처방을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서압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