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8년 4월 28일, 권설이 상대의 건강이 좋지 못함을 알고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며 며느리의 반보기 날 때 만날 수 없어 서운한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김낙행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28년(영조 4) 4월 28일에 權薛이 九思堂 金樂行(1708-1766)에게 보낸 편지이다. 권설은 본관이 安東으로, 冲齋 權橃의 후손이다. 그의 부친은 大拙子 權斗應이다. 권설의 딸인 安東權氏는 霽山 金聖鐸의 아들인 김낙행의 부인이다. 따라서 김낙행에게 권설은 장인이 된다. 김낙행은 영남의 손꼽히는 文獻家였던 권씨 집안에 장가를 들어 그곳의 인물들과 교유함으로써 학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먼저 권설은 지난번 인편으로 김낙행의 안부편지를 받고서, 김낙행이 제법 건강을 상하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멀리서 매우 염려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후 인편이 없어서 병세가 어떠한지 다시 알 수가 없었으므로 매우 답답하였다고 하였다. 이어 적절히 조섭을 취하여 이미 완쾌되었는지, 堂上의 기거는 또한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다행히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했으며 며느리의 반보기 장소가 道村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지금 말[馬]을 내기는 하였으나 도촌과 김낙행의 마을이 자못 멀어서 만날 수가 없기에 더욱 서운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딸아이에게 한 장의 諺書도 부치지 못하였으니 이 한스러운 마음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착명하였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