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9년 1월 25일, 안택준이 상대와 서로 만나서 같이 서울로 가자고 제안하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719년 1월 25일에 宅駿이 서로 만나서 같이 서울로 가자고 제안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택준은 단순히 이름으로 보자면 안동에 金尙憲을 모신 서원을 건립하려고 기도하여 이 지역에 일대 파란을 몰고 왔던 安宅駿일 가능성도 있으나 확신할 수는 없다. 발급인이 안택준이라면, 기해년은 1719년(숙종 45)이 된다.
택준은 자신이 장차 이달 28일에 변경 없이 西行 길에 오르게 되어, 상대와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기에 매우 서운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상대에게 동행할 사람이 없다면 자신이 어찌 상대와의 약속을 저버리겠느냐고 하였다. 이에 부디 상대가 28일에 출발하여 午時 말에 府中에서 자신을 기다리다가 함께 길을 가서 豐基에 머물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시 생각건대 28일은 앞으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상대가 곤란할 것이므로 29일로 날짜를 물리니, 부디 상대가 이 날짜에 일찍 府에 도착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끝으로 白雲齋 李廷藎의 증상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표하였다.
간찰은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위쪽 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이러한 형식을 따랐다.
이 편지는 서울행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함께 가기를 청하고자 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의 경우 휴대전화기 등의 기계로 손쉽게 통화를 할 수 있는 반면 그 당시의 가장 주요한 통신 수단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서간이었다. 따라서 이 서간문을 통해 당시에 거리가 떨어져 있던 상대방과 약속을 잡고 연락을 취하는 방식을 실제로 보여주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