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미년 2월 2일, 이기태 등이 보소를 달성 등지로 정하는 것에 대한 의향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계미년 2월에 李基泰 등이 譜所를 達城 등지로 정하는 것에 대한 의향을 묻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발급인 이기태・李壽永・李東宜・李東徽・李孝三・李孝大・李之永・李佑永은 모두 재령 이씨 문중의 인물들이다.
安城의 宗君은 본래 茅隱 이하 여러 파에 관계되는 바가 중한데, 더구나 자신들의 宗中과 귀 종중은 더욱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하였다. 寓所를 옮기던 날에는 가깝게 인접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피차의 다름이 없거늘, 지금의 형편을 보면 유독 귀 종중만이 홀로 힘써 수고하고 있다고 하였다. 마땅히 宗會를 할 때에 참작하여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족보에 관한 일은 자신들이 앞서 대략 언급하였으므로 지금 또 부언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만 會所를 다시 옮길 수 없다면 譜所는 거리가 서로 같은 곳을 따라 달성 등지로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였다. 또한 20일은 날짜가 너무 촉박하기 때문에 3월 3일로 정하고 한두 사람을 보내어 논의에 참가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추신에서는 咸安과 仁德의 두 齋舍의 일이 거의 끝났는데 전후로 쓴 것이 너무 많아서 매 冠員 당 2냥 7전씩을 배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貴中에서도 수합하였을 것이니 有司를 정하여 仁齋로 보내 달라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에는 여백을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남아 있는 여백에 줄을 높여서 적었고, 행 사이에도 내용과 추록을 기록했다.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