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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甲辰年) 이석휘(李錫彙)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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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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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석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형태사항 크기: 19 X 38.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갑진년(甲辰年) 이석휘(李錫彙) 서간(書簡)
갑진년 4월 13일, 이석휘가 사돈댁에 보낸 편지이다. 이석휘는 며느리가 잘 도착하고 나서 며칠 후에 돌림병으로 앓아누웠다고 하였다. 다행히 겨우 낫기는 했으나 그 시어미와 차남 및 남매가 번갈아 앓고 어린 손자도 홍역을 치렀다고 하였다. 이들 병간호로 며느리가 수척해졌으나 지금은 좋아졌으므로 다행이라고 하였다. 어버이께서도 둘째 아우의 집에 계시는데 늘 편찮으실 때가 많기에 매우 애가 탄다고 하였다. 외에도 이웃의 전염병 소식과 자신의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 등을 이야기 하며 걱정하고 있다.
김동현

상세정보

갑진년 4월 13일, 이석휘가 자신의 근황과 며느리 등 가솔들이 전염병에 걸렸던 사실 등을 알리고 이에 대한 감회를 전하기 위하여 사돈댁에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갑진년 4월 13일에 李錫彙가 사돈댁에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석휘는 三災의 액을 보내고 넉 달 동안 우환에 골몰되었다고 하였다. 며느리가 잘 도착하고 나서 수삼 일 후에 앓아누웠는데,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으나 10여 일을 앓기에 비로소 돌림병에 걸렸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다행히 좋은 약에 힘입어 겨우 소생하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그 시어미가 몇 십일 동안 계속 앓았고 또 차남과 남매가 번갈아 앓고 어린 손자도 홍역을 치렀다고 하였다. 비록 이들 병치레가 무사히 끝났으나 그때는 혈육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하였다. 며느리가 파리해지고 그 머리털이 빠져서 모습이 수척한 鶴이 되었으나 지금은 좋아졌으므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였다. 어버이께서 仲君의 집으로 나가 寓居하고 있는데 늘 편찮으실 때가 많기에 매우 애가 탄다고 하였으며 이웃에 전염병 기운이 있기 때문에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위급한 상황이라고 하였다. 이석휘는 자신의 아들을 일전에 그 외숙 집으로 보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기에 염려된다고 하였고, 무료한 와중에 품안의 갓난아이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상대 쪽의 보릿고개 상황에서도 물었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는 돌려가며 적지는 않았으나 오른쪽 여백에서부터 이어 행간으로 사연을 적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갑진년(甲辰年) 이석휘(李錫彙) 서간(書簡)

搶攘缺界 何別不悵 歲初 率婦與
孫行 退而底時風雨 間關過去而論 然
因汨憂海靡津之中 一線瞻仰 有
難自抑 尙若中鉤魚也 伏未審春
盡夏屆
經棣體候 茂納神休 子舍兄省友
履淸穆 寶覃勻穩 老少
及西隣僉候 周得台〖泰〗平否 面面區區
仰溸不任遠忱之至 査少弟 三灾度厄
四朔憂汨 婦阿轎還利抵 而數三日後
痛臥 初疑憊惱之祟 拕至旬餘 始覺
涉輪 幸賴神劑之效 菫得再甦 而繼此其姑
痛至數旬澒洞 且次豚娚妹迭警 孩孫
亦經疹症 雖此無事出場 其時瓜戒 是豈血
肉所堪 婦阿之戌削 髮爲鵲頭 形如鶴瘦
然今至先咷後笑 是爲不幸之幸耶 所以親
候出寓仲君之家 每多欠諐 煎懼之私 已
無可容 而隣比與葉下 亦多不淨 燎原針
氈之戒 猶屬歇后語也 兒豚 日前 送渠渭陽
家 姑未見還 爲一邊之慮耳 坐在裏許
無聊之中 抱此□兒孩提 爲送日之資 是
實差强處也 麥嶺 亦未免紹興之歎
奉率者寢食 自不甘也 貴近何如 只切無
益之慮而已耳 餘 因宣城去便 忙候不備
伏惟
甲辰四月旬三日 査少弟 李錫彙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