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5월 3일, 김익락이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풍년 들 것만 같았던 보리 작황이 흉년 들것 같다는 내용 등을 적어 사돈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병오년 5월 3일에 槐南 金益洛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익락은 자가 相吉, 본관이 의성이다. 金鎭誠의 아들로, 바로 霽山 金聖鐸의 종손이다.
김익락은 자신이 근래 학질로 여러 차례 극심한 고통을 겪었기에 쇠약한 근력이 더욱 떨어졌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별탈이 없고 河回의 弟兄도 신상에 憂故가 없는 듯하니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의 妹氏와 三從姪婦가 浮脹症에 걸렸는데 그 증세가 가볍지 않기에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근래에 증세가 덜해지는 기미가 있는 것 같지만 완쾌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요란스러운 세상일은 자신이나 상대나 마찬가지인데 상대 쪽이 더욱 심하게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혹 接戰하는 상황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김익락은 문밖에 늘어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날마다 접하고 있으므로 두발이 모조리 셀 지경이라고 하였다. 그는 상대 쪽에서 만약 紛沓하다면 상대의 아들을 자신에게 보내서 쉬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제안하였다. 보리 작황은 처음에는 풍년이 들 것 같았으나 수확할 때에 일꾼들이 흉년이라고 하니 이미 좋은 소식이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비가 내리지 않고 있으니 더욱 실망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상대 季氏에게는 따로 안부편지를 보내지 못하니 이 한스러운 마음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는 돌려가며 적지는 않았으나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