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년 9월 28일, 류연우가 상대 종씨의 부음을 듣고 위로하기 위하여 보낸 위문편지
내용 및 특징
무오년 9월 28일에 柳淵愚가 보낸 慰狀이다. 류연우는 자가 景粹 또는 敬受이고, 본관이 全州이다. 그는 石下 柳建鎬의 3남 중 장남이며, 西山 金興洛의 문인이다. 婦弟라는 그의 자칭을 보건대, 그의 누님이 제산종택으로 시집을 갔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류연우는 상대의 從氏가 갑자기 요절하니 부음을 듣고 매우 놀라고 애통하였다고 했다. 자신이 가을에 병문안을 갔던 날에 비록 종씨가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人事가 갑자기 이에 이를지는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류연우는 상대가 멀리 나가 있다가 갑자기 천고에 원통한 일을 당하였으니, 그 비통한 마음을 어찌 달랬냐고 하였다. 이어 상대와 자신의 두 생질 등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 棘人이 슬픔을 잘 억제하여 몸을 건사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류연우는 자신이 北邊으로 갔던 것은 근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곧 狂火에 동요되었기 때문인데 돌아온 후에는 오로지 困悴하다고 하였다. 또한 눈에 가득하였던 刀劍을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내일 장사를 치를 때에 情理를 보아 참석하여야 하지만 병든 기력으로 할 수가 없으니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에 편지로 대신 위문한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자신의 老昏함이 이와 같아서 위문의 말씀이 이와 같음을 평소 형이 익히 알 것이라고 하면서 양해하면서 봐 달라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이 형식을 좇았다. 다만 추록을 처음에 비워두었던 여백에 기록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