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년 12월 18일, 김익락이 고산서당으로 가서 겪은 일에 대한 감회를 알리고 형제간의 다툼으로 인한 서원 통문을 내자는 논의 등을 알리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정사년 12월 18일에 槐南 金益洛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김익락은 자가 相吉, 본관이 의성이다. 金鎭誠의 아들로, 바로 霽山 金聖鐸의 종손이다.
김익락은 무사히 잘 도착하였는데 다만 중도에 추위를 만나 길을 재촉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겨우 하루를 자고 또 高山으로 향했다고 하였다. 그는 먼 길을 달려온 끝에 곧바로 사람들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 들어가서 拜跪하며 應酬하느라 참고 견디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돌아와서 物議를 보았더니 査丈이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실망한 것 같았다고 하였다.
저번 때 형제간의 다툼은 근래 혹 각자 惕念하여 해소되었는지 물었다. 김익락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는 鄕隣의 일이므로 간여하지 않는 것이 옳지만 일이 玉院과 관계되어 있으므로 조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高山의 道會所에서 통문을 내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내용 가운데 옳지 못한 단서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廬江으로 옮겼다고 하였다. 이는 공론으로 제기된 것이므로 피차 마찬가지로 서둘러야 하는데 상대의 편지에서는 아직 통지를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었으니 반드시 중도에서 지체되어 그러하리라고 하였다. 김익락은 세밑에는 다시 통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편에 편지를 부친다고 하였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하여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간찰의 경우는 돌려가며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사연이 행간에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