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년 4월 22일, 권석준이 삼년상을 마치게 된 상황과 곧 길사를 치러야 할 상황 등 자신의 근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경술년 4월 22일에 權錫準이 보낸 편지이다. 본 편지의 이면에는 輓詩로 보이는 글이 적혀 있다. 권석준은 자신이 삼년상을 마치고 이미 平服을 입게 되었는데 월말에는 장차 吉祀를 치르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더욱 착잡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생가 어머니께서 늘 건강이 온전치 못하시고 종숙의 병환이 회복될 기약이 없기에, 날마다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난번에 보았던 신부는 모든 것이 다 흡족하였으므로, 이 한 가지 일은 족히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자신의 딸은 약을 복용한 후에 조금 살이 붙은 상황인데, 다만 안부를 여쭙지 못한 것을 병 아닌 병으로 여기고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종질부가 완쾌되었는지도 물었다.
보통 조선시대는 『주자가례』등 유교식 예법에 입각하여 4대 봉사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길사는 부모가 돌아가신 후 담제를 지내고 삼년상을 마치고 난 후에 사당의 신위를 체천하는 행사이다. 보통 左昭右穆의 배치 또는 父昭子穆의 행렬대로 신위를 배치하는데, 길사 때는 고위 즉 아버지의 신위가 새로 들어가므로 원래 있었던 고위는 조위로, 조위는 증조위로, 증조위는 고조위로 한 단계씩 높여 체천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의 고조위는 조매를 하거나 또는 항렬 상 해당 고조위가 들어갈 수 있는 其次 집안에서 모셔가기도 한다. 본문에서의 화자는 탈상 이후 이러한 길사를 치르게 될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자료적 가치
이 편지는 당시 상례의 절차를 간단한 사례로서 간접적이나마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양자를 들어간 화자가 생가의 부모님을 걱정하는 모습 또는 주변 친척들의 병환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당시 사대부의 의식을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신부를 맞이한 경우 ‘叶望’, ‘極叶所望’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새로 들어온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부분이 서간문을 비롯한 당시의 글에서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金血祚,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