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2년 3월 1일, 철종이 김두흠을 통훈대부 행 홍문관부수찬 지제교 겸 경연검토관 춘추관기사관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862년(哲宗 13) 3월 1일에 金斗欽을 通訓大夫 行 弘文館副修撰 知製教 兼 經筵檢討官 春秋館記事官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통훈대부는 조선 시대 문신 정3품 당하관의 관품이고, 부수찬은 종6품직이다. 검토관은 정6품직이고, 기사관은 정6품에서 정9품까지의 관직이다. 김두흠은 관품이 관직보다 높기 때문에 조선시대 行守法에 따라 ‘行’을 관품 뒤, 관사 앞에 명시하였다.
홍문관은 조선 시대 궁중의 經書·史籍의 관리와 文翰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관장하던 관서로, 사헌부·사간원과 더불어 三司라 하여 핵심 양반관료조직이었다. 홍문관직은 淸要職의 상징으로서 일단 홍문관의 관원이 되었다는 것은 출세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조선 시대의 정승·판서로서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홍문관의 관원은 모두 경연관을 겸했고, 부제학에서 부수찬까지는 지제교를 겸하였다.
김두흠은 홍문관부수찬에 임명되면서 경연검토관과 춘추관기사관의 직임을 겸임하는데 이는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 『경국대전』에서는 경연의 관직에 대해서 侍講官 이하의 관원은 홍문관의 直提學 이하의 관원이 겸임하도록 하였으며, 춘추관의 관직도 타관의 관원이 겸임하도록 하고 있는데, 정3품 修撰官 이하의 관직은 承政院 및 弘文館 등의 副提學 이하 관원이 겸임하도록 하였다. 경연과 춘추관은 王에게 經書를 강독하고 논평하는 임무를 담당하거나 당시 정치의 기록을 담당하는 업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모두 文官을 임용하였다.
통훈대부는 조선 시대 문신 정3품 下階의 관품으로, 문관들에게 주는 품계에서 정3품 상계인 通政大夫 이상을 堂上官이라 하고, 하계인 통훈대부 이하를 堂下官이라 하였다. 당하관에 해당되는 관직으로는 正·直提學·編修官·左諭善·右諭善·判校·左通禮·右通禮·提擧·贊善·上護軍·牧使·大都護府使 등이 있다.
김두흠은 풍산김씨 竹峰 金侃의 6대손으로, 『豊山金氏世譜』에 의하면 김중남의 아들로 金重佑에게 입양되었는데, 김중남의 부친인 金宗鎬는 김중우의 부친인 金宗錫의 아우로, 김두흠의 5촌 숙부에게 양자 간 것이다. 김두흠은 1843년과 1866년에 두 차례나 문과에 급제하는데 그 문서가 이 집안에 남아 있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