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 4월, 헌종이 김중우를 절충장군 행 용양위부호군 겸 오위장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849년(憲宗 15) 4월에 金重佑를 折衝將軍 行 龍驤衛副護軍 兼 五衛將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절충장군은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상관의 관품명으로 武散階의 가장 높은 품계이고, 용양위부호군은 종4품직이고, 오위장은 종2품직이다. 김중우는 관품이 관직보다 높기 때문에 조선시대 行守法에 따라 ‘行’을 관품 뒤, 관사 앞에 명시하였다. 오위에는 義興爲·龍驤衛·虎賁爲·忠佐爲·忠武衛가 있는데, 오위장이 총괄한다.
김중우는 동년 1월에 나이 70세가 되어 侍從臣인 전 사헌부지평김두흠의 부친이므로 가자하라는 명에 따라 통정대부에 임명되고, 3개월이 지나 이 자리에 임명된 것이다. 시종신은 조선 시대에 홍문관의 玉堂, 사헌부나 사간원의 臺諫, 예문관의 檢閱, 승정원의 注書를 통틀어 이르던 말이다. 『續大典』에 의하면 “시종관의 부친 및 閫帥의 부친이 나이 70세인 자는 매년 연초에 이조 및 병조에서 그 명단을 뽑아 기록하여 임금께 아뢴 뒤에 품계를 올려주지만, 종2품 嘉善大夫 이상인 자는 품계를 올리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규정에 따라 김중우의 나이가 70세가 되자 전 사헌부지평이었던 김두흠의 부친이라는 이유로 통정대부에 임명한 것이다.
김중우는 풍산김씨 竹峰 金侃의 5대손으로, 『豊山金氏世譜』에 의하면 김중남의 아들인 김두흠을 양자로 들였다고 되어 있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관원을 임명할 때 쓰인다. 『경국대전』 禮典에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이 규정되어 있다. 문서에는 왕의 고유 임명권한을 밝히는 ‘敎旨’를 첫머리에 쓰고, 본문에 ‘인명+爲+品階+관직+者’의 순으로 임명 내용을 기입한다. 관계와 관직에 차이가 날 경우에는 관직명 앞에 ‘行’과 ‘守’자를 넣어 구분하였다. 마지막에는 행을 바꾸어 중국연호와 발급일을 쓰고 연호 위에 ‘施命之寶’를 찍어 임명당사자에게 발급한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