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3년 10월 3일, 정조가 유학 김종석에게 생원 3등 제20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생원시 합격증서
내용 및 특징
1783년(正祖 7) 10월 3일에 유학 金宗錫이 生員試에 3등 20인으로 합격하였음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문무과[大科]가 33인을 뽑는데 비해 생원진사시[小科]에서는 100인을 뽑았는데, 1등이 5명, 2등이 25명, 3등이 70명이다. 김종석은 생원시에 3등 제20인으로 합격하였으므로 이는 전체 50등으로 합격하였음을 의미한다. 뒷면 표지에는 황색 종이 위에 ‘幼學金宗錫生員三等第二十人’을 한 줄로 써서 생원시 급제자의 당시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였는데, 생원시 합격 당시 김종석은 幼學의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종석은 풍산김씨 竹峰 金侃의 4대손으로 생원시 합격 당시 부친은 사망하고 모친만 모시고 있었다. 『豊山金氏世譜』에 의하면 김종석은 손자인 金寅欽으로 인해 通政大夫 奎章閣副提學에 추증되었다고 되어 있다. 『경국대전』에는 추증과 관련해서 ‘종친 및 문관․무관으로서 實職 2품 이상인 자는 그의 父祖 3대를 추증한다’고 되어 있는데, 『대전회통』에 오면 ‘閣臣의 증직은 규장각의 관직을 그 품계에 따라 관례대로 겸하여 추증한다’고 하여 증직 범위를 넓혔다. 그렇기 때문에 규장각직제학이었던 김인흠의 조부인 김종석도 추증이 된 것이다.
생원시에 합격하면 이들에게는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이 부여되며, 성균관에 입학해 300일 이상 수학하면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생원시에 합격했다는 것은 관직으로 나아갈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므로 바로 문과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문과합격자에게 발급되는 홍패에서 생원이나 진사가 아닌 幼學의 신분으로 합격한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백패는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합격 증서로 흰 종이에 쓰며, 연호의 두 번째 글자 위에 ‘科擧之寶’를 찍는다. 경국대전 禮典에 백패에 관한 문서식이 규정되어 있는데 문무과 합격자에게 발급한 홍패식과 유사하다. 다만 합격증서의 색깔과 합격을 뜻하는 용어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무과 합격자에게는 ‘及第’라고 하고,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는 ‘入格’이라고 써서 이들을 구분하였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