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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 김성탁(金聖鐸) 고신(告身)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3+KSM-XA.1730.1100-20110630.0090222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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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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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정치/행정-임면-고신
작성주체 김성탁, 이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730
형태사항 크기: 55.7 X 74.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천전 의성김씨 제산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30년 김성탁(金聖鐸) 고신(告身)
1730년 8월에 이조에서 영조 임금의 명을 받들어 진사 통덕랑김성탁통덕랑 행 영릉참봉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통덕랑은 정5품이고, 참봉은 종9품직으로 조선 시대 관직의 가장 아래에 위치해있다. 문과 급제를 하지 않는 경우 보통 참봉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간다. 김성탁은 동년 9월 12 노모의 병이 위중하다는 이유로 사직 상소를 올리고 부임하지 않는다. 통덕랑은 정5품으로, 문관 5품 이하를 士라 하고 그 이상을 大夫라 하였으니 통덕랑은 사의 가장 윗자리이다. 이 문서는 5품 이하 관원에게 내리는 문서로, 문관인 경우 이조에서, 무관은 경우 병조에서 발급한다.
최연숙

상세정보

1730년 8월,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진사 통덕랑김성탁통덕랑 행 영릉참봉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730년(英祖 6) 8월에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進士 通德郞金聖鐸통덕랑 행 영릉참봉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김성탁1711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기 때문에 진사라 한 것이다. 통덕랑은 정5품 상계, 참봉은 종9품직이다. 김성탁은 관품이 관직보다 높기 때문에 조선시대 行守法에 따라 ‘行’을 관품 뒤, 관사 앞에 명시하였다. 영릉은 조선세종과 그 비 소헌왕후의 능으로, 경기도여주군능서면에 있다.
김성탁은 진사시 합격 이후 품계는 받았지만 관직을 받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나아가지 않고 9월 12일에 노모의 병이 심각하여 직임을 맡을 수 없다는 상소를 올려 영조의 허락을 받는다. 실록 기사에 의하면 1731년 2월 27일에 영조慶尙道暗行御史李潝을 引見하는 자리에서 이흡김성탁을 각별히 조용할 것을 청한 내용이 보이는데 이때부터 김성탁영조의 관심을 받게 된다. 김성탁은 1735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계속 요직에 임명하여 부르지만 나가지 않고, 1737李玄逸의 伸寃疏를 올렸다가 旌義에 유배될 때까지 영조의 신임을 받아 여러 요직에 임명되며 승승장구하지만, 유배지에 풀려나지 못하고 1747년에 사망한다.
이 문서는 5품 이하의 문무관원에게 발급되는 敎旨이다. 4품 이상이 臺諫의 署經을 거치지 않고 왕명에 의해 바로 임명되는데 비해, 5품 이하 9품까지는 대간의 서경을 거쳐 이조,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한다. 문서식도 4품 이상 관원에게 발급하는 것과는 다르다. 4품 이상 관원에게 발급하는 告身에서 문서 첫머리에 ‘敎旨’를 쓰는 것과 달리 5품 이하 관원에게 발급하는 고신에는 이조병조가 왕의 명을 받들어 임명장을 발급한다는 의미의 ‘奉敎’를 쓴다. 문서 발급에 있어서 착명은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낭관 각 1인이 하였는데, 이 문서의 발급에는 이조참판만이 참여하고 있다. 관품과 관직에 차이가 날 경우에는 관직명 앞에 ‘行’과 ‘守’자를 넣어 구분하였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30년 김성탁(金聖鐸) 고신(告身)

吏曹雍正八年八月
十一日奉
敎進士通德郞金聖鐸
通德郞行
英陵參奉

雍正八年八月 日
行判書
參判[着名]
參議
正郞
佐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