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3년 12월 19일, 숙종이 김방걸을 통정대부 사간원대사간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693년(肅宗 19) 12월 19일에 숙종이 金邦杰을 通政大夫 司諫院大司諫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으로 문신 당상관의 품계이고, 사간원대사간는 정3품직으로 大諫 또는 諫長으로 불렸다. 대사간에게는 書吏, 皂隷, 羅將을 각각 1명씩 제공하였다.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諫諍을 맡아 왕권을 견제하고 관리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두어진 핵심적인 관서로, 문과 출신의 명망 있는 인물이 아니면 임명될 수 없었다. 대사간은 대사헌과 함께 언론과 규찰을 주도하는 중책을 맡고 있었으므로 여러 가지 특권이 보장되어 있었고 승진도 또한 빨랐다.
김방걸은 전년 6월 1일에 사간원대사간에 그 해 7월 4일에 사직상소를 올리기 시작하여 결국 7월 26일에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된 뒤에 승정원에서 발급한 有旨가 전해진다. 이번에 다시 사간원대사간에 임명되었지만 계속 사직 상소를 올려 결국 1694년(숙종 20) 2월 15일에 병조참의로 옮겨지게 된다. 이후 동년 여름에 일어난 仁顯王后의 復位와 함께 南人이 화를 입은 사건으로 인하여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가 전라도同福으로 유배를 당하고 1695년(숙종 21) 4월에 73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사망한다.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都正·副尉·參議·參知·도승지·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判決事·대사간·參贊官·부제학·직제학·대사성·祭酒·修撰官·輔德 등이 있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관원을 임명할 때 쓰인다. 『경국대전』 禮典에 ‘文武官四品以上告身式’이 규정되어 있다. 문서에는 왕의 고유 임명권한을 밝히는 ‘敎旨’를 첫머리에 쓰고, 본문에 ‘인명+爲+品階+관직+者’의 순으로 임명 내용을 기입한다. 관계와 관직에 차이가 날 경우에는 관직명 앞에 ‘行’과 ‘守’자를 넣어 구분하였다. 마지막에는 행을 바꾸어 중국연호와 발급일을 쓰고 연호 위에 ‘施命之寶’를 찍어 임명당사자에게 발급한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