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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병철(秉喆) 만사(輓詞)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I.1914.4717-20100731.0015277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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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시문류-만사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만사
작성주체 병철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작성시기 1914
형태사항 크기: 46.8 X 55.4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허백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4년 병철(秉喆) 만사(輓詞)
낭위의 벼슬을 지낸 인명 미상의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김병철 쓴 애도가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귀한 낭위의 벼슬을 지냈고, 그 문중에서도 지체와 명망이 우뚝 뛰어났음을 생각하고, 또한 인자한 그가 효성스럽고 조상도 잘 모시는 자였기 때문에 70을 넘는 세월을 살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이와 가까운 친척은 자신밖에 남지 않아 남겨진 가족들이 걱정되었다. 결국 죽은 이의 살아생전에 쌓은 선한 복덕으로 인해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 있음을 보고 위안을 삼았다.
김동현

상세정보

1914년, 병철낭위 벼슬을 망자를 기리기 위해 쓴 만사
[내용 및 특징]
1914김병철낭위 벼슬을 지낸 인명 미상의 망자를 기리기 위해 쓴 만사이다. 혼탁한 세상에 귀한 낭위 자리를 지내고 문중에서도 지체와 명망이 뛰어났다고 했다. 또한 효를 생각하고 선조를 추모하기를 극진히 한 그 어진 망자의 연령이 이 때문에 고희(古稀)가 넘은 장수를 누렸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가까운 친족은 자신밖에 남지 않음을 한탄하며 유족들을 걱정하고 있으나 결국 망자가 생전에 쌓은 복선(福善)으로 인해 훌륭한 자손들이 많이 있음을 위안 삼았다.
이 만사의 작성년도는 추측에 의한 것이다. 이 추측이 나올 수 있었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선『풍산김씨세보』에는 이 만사를 지은 김병철의 생몰년을 1881년에 출생해서 1951년에 사망했다고 기록한다. 둘째, 이 당시에 풍산김씨의 심곡파, 즉 김경조의 종손가에는 김낙주(1824~1869), 김낙중(출계함), 김병황(1845~1914), 김정섭(1862~1934)이 생존해 있었고, 나머지 남자들은 생몰년이 문서가 작성된 것으로 추측하는 시기와 크게 벗어난다. 세 번째, 이 시기에 낭위를 지낸 인물은 김병황뿐이다. 네 번째, 고희를 넘겼다고 했는데, 김병황이 딱 고희를 넘기고 사망하다. 따라서 이 만사는 김병황이 사망한 1914년에 쓰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을 애도하는 만사는 망자에 대해 생전 행적을 이야기 하고 그에 대한 산자의 회한을, 그리고 일평생을 쌓아온 업적에 대한 후세 사람들의 평가를 시가의 형태로 노래한 것이다. 이 만사를 통해 망자가 생전 낭위 벼슬을 지냈고 인망이 높았다는 점, 그리고 고희에 웃도는 나이로 사망했다는 정보를 제공 해 준다. 망자를 위해 애도하고 남겨진 그의 가족들을 안타까워하며 화자는 자신의 슬픈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김병철은 본래 김봉조의 후손으로 풍산김씨 학호파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부는 김낙청으로 김봉조→김시종→김려신→김건→김서린→김의원→김상성→김종문→김중원→김필흠으로 이어지는 내력이 있다. 김낙청은 김병용, 김병구, 김병철, 김병준 4형제를 두었고, 이 중 셋째인 김병철을 양자로 보냈다. 김병철이 양자로 들어간 집은, 망와파인 김영조의 후손가이다. 양자 들어간 집의 내력은, 김영조→김시익→김갑수→김성→김서집→김택원→김상호→김종봉→김중하→김규헌→김이락으로 이어지는 집에 양자들어가 가계를 계승하게 된 것이다.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4년 병철(秉喆) 만사(輓詞)

世渾郞位貴宗重地望
巍孝思追先盡仁齡軼
古稀近親惟我在闔族
竟誰依福善曾無僭庭
前寶樹輝

族從秉喆痛哭拜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