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903년 이기호(李起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F.1903.4776-20100731.001525700727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기호, 김창섭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양군
작성시기 1903
형태사항 크기: 21.2 X 44.7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허백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3년 이기호(李起鎬) 서간(書簡)
장인에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상대가 부탁한 것으로 보이는 물품을 보내기 위해 계묘년 9월 30일 이기호가 쓴 편지이다. 본문에서 사용한 빙부라는 용어는 장인어른을 뜻하며, 따라서 이 편지는 사위가 장인에게 보내는 편지라 할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소식이 없어서 장인의 가르침이 적힌 편지를 받지 못하여 그리웠다고 했다. 이어서 장인의 살아 계신 부모 내외분들, 장인과 장인의 형제분들, 장모의 안부를 알지 못해 아침저녁으로 간절히 그리운 마음이 쓰이는 것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장모가 아이를 낳은 일과 관련하여 아들을 얻은 경사를 언급했다. 자신의 경우 집안의 할아버지의 건강은 아무 탈이 없으나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자신의 건강함만으로 집안의 다행을 삼을 수 없음을 이야기 했다. 또한 공부하는 일도 아예 손 놓고 있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헛되이 시간만 허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고 하며 장인의 염려하고 기대 해 주시는 정성을 저버릴까 두렵다고 했다. 장인이 지난번 ‘삼지초(三芝草)’라고 하는 아마 담배인 듯한 물건을 부탁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빛깔은 다른 것에 비해 떨어지나 맛은 최상품일 것 같은 값비싼 삼지초 네 발을 구해 부친다고 알렸다. 나머지는 편지의 예를 다 갖추지 못함을 알렸다.
『풍삼김씨 오미동』, 풍산김씨오미동문중, 교육사, 2003
김동현

상세정보

1903년 9월 30일, 이기호가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삼지초를 보내기 위해 장인 김창섭에게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903년 9월 30일, 이기호가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삼지초를 보내기 위해 장인 김창섭에게 쓴 편지이다. 여러 해 동안 장인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그립던 차에 장인의 생친 내외분들, 장인과 형제분들, 장모의 안부를 알지 못해 아침저녁으로 그리운 정성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알렸다. 특히 장모의 출산과 관련하여 아들을 얻은 경사를 언급했다. 자신의 경우 조부의 건강은 무탈하나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오로지 자신의 건강함만으로 집안의 다행을 삼을 수 없음을 이야기 했다. 또한 공부하는 일도 아예 손 놓고 있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헛되이 시간만 허비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고 하며 장인의 염려하고 기대 해 주시는 정성을 저버릴까 두렵다고 했다. 장인이 지난번 삼지초라고 하는 아마 담배인 듯 한 물건을 부탁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빛깔은 떨어지나 맛은 최상품일 것 같은 값비싼 삼지초 네 발을 구해 붙인다고 알렸다. 나머지는 편지의 예를 다 갖추지 못함을 알렸다.
본문에서 빙부(氷父)는 장인인 빙부(聘父)를 뜻한다. 따라서 이 편지는 사위가 장인에게 보내는 편지라 할 수 있다. 이기호김창섭은 근대시기를 살았던 인물이며, 특히 김창섭은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 편지로 역사적 인물인 김창섭이 사위인 이기호에게 안부를 듣고, 자식을 출산한 것에 대해 축하도 받았으며, 그에게서 삼지초라는 일종의 담배로 보이는 물건을 받는 등의 사적인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처가 식구들의 안부를 걱정하는 화자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삼지초’라고 하는 지금은 쓰지 않은 용어도 확인 할 수 있는 가치있는 자료라고 하겠다.
『풍산김씨세보』에 의하면, 김창섭은 본래 김경조의 후손으로 김병균(金秉均)의 차남이었으나, 김봉조의 후손인 김병옥(金秉鈺)에게 출계하여 허백당문중의 16대 종손이 되었다. 김창섭은 2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김원재, 김형재이고, 딸은 이기호와 이승해에게 시집갔다. 아들들은 각각 1906년과 1909년에 출생하였다. 『세보』에 1903년에 출생한 아들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어떤 변고가 있었던 듯하다.
『豊山金氏世譜』, 풍산김씨 중앙종친회, 회상사, 1990
『풍삼김씨 오미동』, 풍산김씨오미동문중, 교육사, 2003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3년 이기호(李起鎬) 서간(書簡)

氷父主前上書
違誨數朔慕仰更切伏未審霜令
兩闈氣體候連享岡陵
省餘棣床動止候万安氷母主
娩期已過果得弄璋之慶否漠
然無聞伏慕之沈日夕不弛外甥
老人候幸免大添而親候以甚症
洽旬欠安豈以賤狀之無病爲幸
耶所工雖不全廢而未免浪度
恐負倚待之盛意奈何前者
下托三芝草歸卽廣求得四把
以送其物色則雖無足以動人
若以香味言之則此間似無
出此右者不計價高依敎
求送耳餘不備上書

癸卯九月十三日外甥李起鎬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