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4월 15일, 유지영이 김해 부사에 재직 시 사가의 식구들과 시집보낸 여식의 안부를 묻기 위해 사위에게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886년 4월 15일, 유지영이 김해부사에 재직 시 사가의 식구들과 시집보낸 여식의 안부를 묻기 위해 사위에게 쓴 편지이다. 김해부사로 내려 간 이래로 소식이 막혔기에 매우 그리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사돈 내외와 사위 형제들까지 두루 안부를 묻고, 이 달 초에 시집보낸 여식은 잘 지내고 있는지 염려되는 마음을 표현했다. 자신은 피폐한 고을로 부임한 뒤로 사무가 분주하고 쇠병이 더쳐서 극성하여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시름겨우나 衙率들이 우선 의지하고 있어서 조금은 다행이라고 하며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 했다. 나머지는 여러모로 분주하여 代로 쓰이고 이만 줄인다고 했다.
본문에서 ‘莅玆弊局’ 즉 피폐한 고을로 부임했다는 말은 이 때 김해부사로 부임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金秉璜日記』 권2 1886년 2월 8일 기사를 참고해 보면 ‘姻叔令除金海’라는 기사가 보인다. 여기에서 ‘姻叔’은 ‘처숙부’를 뜻하는 말로 김병황일기에서 보통 ‘河東令’, ‘志山令’, ‘姻叔令’, ‘安東令’ 등으로 표현되는데, 모두 유지영을 지칭하는 것이다. 풍산김씨 金秉璜의 장인이 풍산유씨 柳驥榮이고, 유기영과 유지영은 형제관계이므로 김병황의 입장에서 그를 ‘인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지영의 호가 ‘志山’이며, 1870년에는 안동부사를 역임한 적이 있었고, 사는 곳이 하회동촌[河東]이었다. 일기 기사 연도와 이 서간의 발행 연도가 일치하고, 일기에서 2월과 이 서간에서의 4월이 인접한 시기이므로 아마도 김병황일기에서 등장하는 김해부사 ‘인숙령’은 바로 유지영을 의미하며, 이 서간 내용에서의 ‘피폐한 고을’은 바로 김해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 해 볼 수 있다.
『金秉璜日記』, 金秉璜, 2007
『안동시사』, 안동시,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