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2월 1일, 김두흠이 둘째 아들 김낙중에게 보낸 편지
[구성 및 내용]
일반적인 편지의 형식 가운데, 처음에 묻는 인사가 생략되어 있고 곧바로 편지를 받게 된 사연과 그간의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후 집안의 어른들의 안부를 묻고 있으며, 자신이 최근 상황이 어떤지를 설명한다. 끝부분에는 서울의 소식을 잠깐 전하고, 돈을 보내는 문제와 옷을 보내니 잘 살펴서 받으라는 부분, 자신의 안부를 대신해서 여쭈어달라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편지를 받게 된 정황을, 하인으로 보이는 수동을 통해 편지를 보냈는데 받아 보았는지를 묻고, 석장편으로 수취인의 형, 즉 김낙주의 편지를 받아보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김낙주가 26일에 길을 떠났는지 묻고 있는데, 장소와 목적을 묻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발급인도 이미 그 정황을 알고 있는 듯하다. 다음으로 자신의 안부를 간단하게 전달하고, 편지의 목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돈에 대해 묻는다. ‘문중의 돈은 교환하는 조건이 60냥인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니 20냥을 다시 교환해서 보내라는 것’으로 보아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소식을 전하는 부분은, 관찰사가 판서이삼현으로 새롭게 제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지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경상도관찰사로 보인다. 끝 부분에는 옷을 보내니 분실이 없는지 하나하나 잘 살펴서 받으라는 것과, 양동의 사형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양촌에는 답신을 보내지 못했으니 대신 안부를 전해달라는 내용이다.
간찰의 사연이 짧을 경우 상하좌우의 여백이 그대로 남지만, 사연이 다 끝나지 않을 경우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 다음은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으며, 그 다음은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 간찰의 경우도 일반적인 간찰이 형식을 좇았다. 처음에도 여백이 없이 글을 썼으며, 위쪽에도 여백이 없이 채워썼다. 아마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이기 때문에 형식을 좇지 않은 듯하다.
[자료적 의의]
풍산김씨 허백당 종가에는 김두흠이 1866년에 고향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총 4편이 보관되어 왔다. 이 편지는 2월 1일에 보낸 것으로 시간상으로는 첫 번째에 해당되며, 나머지는 3월 10일, 3월 16일, 4월 13일에 보낸 것이다. 이 4편의 편지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한다면, 당시 김두흠 집안의 사건은 물론 서울의 소식, 그리고 향촌의 양반이 서울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이 필요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두흠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첫째는 김낙주이고 둘째는 김낙중이다. 김낙중은 김대현에서 김봉조로 이어지는 학호파의 주손이 되어 후사를 잇게 되고, 배위는 진성이씨이다. 큰 아들 김낙주의 배위는 여강이씨 생원 이기상(李耆祥)의 딸로 회재 이언적의 후손이다. 이것으로 보아 편지에서 말하는 양동의 사형은 큰 아들이 양동으로 장가들어서 맺어진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풍산김씨 오미동』, 김재억, 2003, 교육사
『풍산김씨세보』, 풍산김씨중앙종친회, 1990, 회상사
정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