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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유심춘(柳尋春) 위장(慰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F.1832.4725-20100731.02302570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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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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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위장
작성주체 유심춘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작성시기 1832
형태사항 크기: 25 X 32.9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2년 유심춘(柳尋春) 위장(慰狀)
1832년 11월 30일, 유심춘이 상대가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일을 잘 치른 것에 대해 위로하고 또한 자신의 현재 상황과 신년 달력을 부칠 것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글쓴이는 상대가 큰 흉년과 매우 추운 날씨 가운데서도 이를 무릅쓰고 세 분의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일을 순조롭게 치른 것에 대해 위로를 하며, 이는 바로 상대방에게 지극한 효성이 있어서 잘 된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어서 상대방과 그의 집안 형제분들의 안부를 묻고, 특히 이번 이장에서의 상주(喪主)가 혹시나 병이라도 날까 걱정하고 있다. 화자는 자신도 역시 상을 치르는 중에 있으면서도 새롭게 장만한 집으로 출타했다가 다시 돌아와서, 현재는 그 피로로 인해 병들어 있다는 상황을 알렸다. 또한 흉년으로 상대의 큰일을 치르고 난 전후 사정에 대해 도움을 주지 못한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끝으로 신년 달력 한 부를 이 편지와 함께 부쳤음을 알렸다.
김동현

상세정보

1832년 11월 30일, 유심춘이 풍양조씨 문중에 보낸 위장편지
[내용 및 특징]
1832년 11월 30일, 유심춘이 상대가 면례(緬禮)를 잘 치른 것을 위로하고 자신의 근황과 신력(新曆)을 부칠 것을 알리기 위해 풍양조씨 입재공파의 문중에 보낸 편지이다. 화자는 상대방에게 큰 흉년과 극심한 추위를 무릅쓰고 삼위(三位)분의 면례를 순조롭게 치른 것에 대해, 지극한 효성에 감화되어 그러한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 및 그의 집안과 형제분들의 안부를 묻고, 특히 면례의 상주(喪主)가 병이 날까 걱정하고 있다. 화자는 자신도 역시 상중(喪中)에 있으면서도 새로운 집으로 출타했다가 돌아와서 현재는 그 피로로 인해 병들어 있는 상황을 알리고 있다. 또한 흉년으로 상대의 큰일을 치르고 난 전후 사정에 대해 도움을 주지 못한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끝으로 신력(新曆) 한 건을 부쳤음을 알렸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당시 흉년이 든 때에 조상 3위의 면례를 치른 것으로 보면 가세(家勢)가 있는 집안이 아니었을까 추측 해 본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평과 궐이 동시에 쓰였다. 궐은 尊․令胤 등과 같이 존장자를 지칭하는 특정한 단어에서 이루어졌고, 평은 緬事와 같이 관혼상제나 선조․특정 건물 등을 지칭할 때 행해졌다.
[자료적 가치]
이 편지로 위장의 형식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큰일 잘 치르게 된 이유로써 효성의 지극함을 언급 한 부분은 그 당시 일반 사대부들의 유교적 관념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민속학적으로도 상장례 풍속 가운데 특히 면례가 치러지는 상황에서도 초상 때와 같이 치르는 상황 등을 간접적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세밑에 신력을 선물하는 모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 온 풍습의 과거 형태를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으며, 상대에 대한 정중한 태도 및 진심어린 위로와 걱정을 하는 부분은 화자의 인품과 정을 확연히 드러내 주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유심춘의 문집인 『강고집(江皐集)』(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퇴계학자료총서』87~88, 2005)에도 마침 이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두 편의 글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부분을 제외하고, 문집과 이 편지에서 차이가 있는 부분은 “ … 令季令從氏俱無生病之慮 … 君 … 侍 … 服從自 … 奈何 … 而 … 新曆一件送呈而短小似不足寄人可歎病撓姑不宣狀禮”이다. 유심춘의 문집은 간행경위가 밝혀져 있지 않아서(「해제」를 쓴 이종호는 1866년 유심춘이 영의정에 추증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후손과 문인들이 문집을 편집․간행했을 것이라고 한다) 누구에 의해 편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문집 간행시에 글의 편집과 내용 수정까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문집에는 편지의 제목이 「與趙氣帥 壬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기수는 조술지(趙述志)의 자이며 조목수(趙沐洙, 1736~1807)의 아들이다. 이외에도 조시경의 유고인 『중애공고(中厓公稿)』에도 유심춘이 면례시에 지은 제문이 있으며, 지은이는 외손 유심춘으로 기록되어 있다.
『퇴계학자료총서』 (87~88, 『강고집』), 유심춘, 성심, 2005
『豊城世稿』, 조정 외,
박병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5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32년 유심춘(柳尋春) 위장(慰狀)

省式大歉之歲劇寒之時
三位緬事一日順行非誠孝所感烏能如是悲慕
之餘繼以歎服不審閱旬勞撼積時悲悴
服履起居保無大加損傷而令季令從氏俱無生
病之慮胤哀氣血姑未壯盛易致毁疾惟
嗇養以自愛而並以及於胤君哀侍切仰切仰
服從自新寓昨日還巢而自不無觸傷之害委
頓呻痛若不能堪老且病如是憐歎奈何荒憂
非吾輩所可遭況尊家纔經大事凡百可點想而
無以爲毫分相助之道傷哉貧也新曆一件送呈
而短小似不足寄人可歎病撓姑不宣狀禮
壬辰至月晦表從尋春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