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 10월 3일, 유심춘이 문후를 드리고 또 어떤 일에 대해 상의를 할 목적으로 찾아가겠다는 것을 알리고자 표종형에게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803년 10월 3일, 유심춘이 문후를 드리고 또 어떤 일에 대해 상의를 할 목적으로 찾아가겠다는 것을 알리고자 쓴 편지이다. 도암서원에서 상대를 잠시 뵌 뒤로 만나지 못해 그리운 감정을 표현하고, 기수와 안숙을 만나 상대가 두루 편안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서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모친께서 자주 편찮으시고 자신도 역시 자질구레한 업무가 바빠서 걱정이 많은 형편을 알렸다. 그리고 안숙은 궂은 날씨에도 돌아가겠다고 한 일과 보름 전후로 상대를 찾아가 문후를 드리고 또한 기수를 통해 전해올린 자잘한 일들에 관해 상의를 드릴 것을 알렸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는 전형적인 회문식을 좇았다고 볼 수 있다. 보통 편지의 상단은 중앙을 중심으로 절반을 가르고, 각각 편지의 왼쪽과 오른쪽을 끝점으로해서 써내려가지만 이 편지의 경우 반시계방향으로 90〫〫〬 씩 돌려가며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문서는 여러 건의 편지와 함께 묶여 있다. 편지에는 특정한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풍양조씨 집안에서 보관의 편의를 위해 한데 묶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풍양조씨의 조정(趙靖)과 그 후손들의 유고를 모아놓은 『풍성세고』에는 조시경(趙時經)의 유고인 『중애공고』가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조시경은 2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조석우와 조석로이고, 세 딸 중 3녀는 풍산유씨 유광수(柳光洙)에게 시집갔다. 조석우에게는 세 아들이 있는데, 조목수, 조학수, 조사연이다. 또한 유심춘의 문집인 『강고집』에 의하면, 그의 생부는 유광수이며, 15세에 생부가 졸하자 백부 유발(柳潑)에게 출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편지는 유심춘이 그의 생모인 풍양조씨 가문에 보낸 것으로, 수취인은 조목수 3형제 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豊城世稿』, 조정 외,
『퇴계학자료총서』 (87~88, 『강고집』), 유심춘, 성심, 2005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