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년 5월 7일, 김성구가 자식이 과거시험을 보고 왔음을 알리기 위해 조원장에게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702년 5월 7일, 김성구가 자식이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고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몸도 불편하고 집안의 우환들이 근래에 더욱 심해져서 밤낮으로 질병 때문에 괴롭게 산다고 했다. 그리고 집의 아이가 작은 것을 얻었으나 큰 것을 잃고 돌아왔다고 했다. 이는 아마도 아이가 과거시험을 보러갔다가 소과에 합격하고 대과에 떨어진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로 인해 만족스럽지는 못하나 오직 무사히 다녀왔다는 점이 그러한 득실을 따질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상대에게 문후를 드리러 가야하나 그것이 일찍이 될지 늦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또한 손자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다행이며, 나머지는 병 때문에 급하게 쓰느라 갖추지 못한 점을 잘 살펴달라고 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봤을 때 이 편지의 수취인인 조원장은 아마도 딸을 시집보낸 사돈댁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처음에 여백을 꽤 많이 남기고 내용을 쓰기 시작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90도를 돌려쓴 뒤에, 처음에 비워둔 부분에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이 편지는 피봉의 여러 가지 형식 가운데 單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단봉이라는 것은 피봉이 하나인 것으로 피봉이 있는 경우와 피봉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와 같이 피봉이 없는 경우는 내지에 사연을 쓰고 다 접은 다음 그 접은 곳이 바로 보통의 피봉과 동일하게 중간을 기점으로 좌우에 수급자와 발급자에 대한 사항을 쓰고 아래 봉합처에 해당하는 곳에 착명하였다.
朴秉濠,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05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