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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5년 김성구(金聲久)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F.1695.4773-20100731.02302570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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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성구
작성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작성시기 1695
형태사항 크기: 27.7 X 43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95년 김성구(金聲久) 서간(書簡)
1695년 6월 26일, 김성구가 자식이 귀양살이에서 방석의 명을 얻었으나 환수의 계가 나왔음을 알리기 위해 수취인 미상에게 쓴 편지이다. 소식이 끊어진지가 한 계절을 지날 정도였으나 그 회포가 느슨해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창의 농번기에 사람을 빼내어 상대에게 안부를 물을 수 없었기에 그 한스러움이 넘실넘실 아득함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장마더위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또한 시집보낸 여식의 병세가 어떠한지, 그리고 손자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그 가지가지가 염려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병들어 죽지도 않고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하며 살아가기에 넉넉히 세월을 보내려 해도 그렇지 못해 스스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집의 아이도 귀양살이로부터 풀어주라는 임금의 명을 얻긴 했으나 대간(臺諫)들로부터 다시 그 명을 거두어 달라는 계(啓)가 나왔다 하니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를 심정으로 암담해하고 있다. 나머지는 다 갖추지 못하여 잘 살펴달라고 했다.
김동현

상세정보

1695년 6월 26일, 김성구가 자식이 귀양살이에서 방석의 명을 얻었으나 환수의 계가 나왔음을 알리기 위해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695년 6월 26일, 김성구가 자식이 귀양살이에서 방석의 명을 얻었으나 환수의 계가 나왔음을 알리기 위해 수취인 미상에게 쓴 편지이다. 소식이 끊어진지가 한 계절을 지날 정도였으나 그 회포가 느슨해 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한창의 농번기에 사람을 빼내어 상대에게 안부를 물을 수 없었기에 그 한스러움이 넘실넘실 아득함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장마더위에 상대의 안부를 묻고 또한 시집보낸 여식의 병세가 어떠한지, 그리고 손자들의 안부가 어떠한지 그 가지가지가 염려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은 병들어 죽지도 않고 남은 목숨을 겨우 부지하며 살아가기에 넉넉히 세월을 보내려 해도 그렇지 못해 스스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집의 아이도 귀양살이로부터 방석(放釋)하라는 임금의 명을 얻긴 했으나 대간(臺諫)들로부터 다시 그 명을 환수(還收)하라는 계(啓)가 나왔다 하니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를 심정으로 암담해하고 있다. 나머지는 다 갖추지 못하여 잘 살펴달라고 했다.
김성구의 네 아들 가운데, 이 당시에 규양갔던 이는 김여건이다. 김여건은 1694년에 파직당해서 명천(明川)으로 귀양갔다. 1695년에 석방하라는 논의가 있었다. 이 문서는 여러 건의 편지와 함께 묶여 있다. 편지에는 특정한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풍양조씨 집안에서 보관의 편의를 위해 한데 묶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간찰의 내지를 작성할 때 대체로 처음에 피봉의 너비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 되는 부분을 여백으로 비워두고 시작한다. 간찰의 사연이 다 끝나지 않았을 때에는 본문의 상여백에 이어 적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작할 때 남겨 두었던 오른쪽 여백에 이어 적는다. 그래도 모자라면, 본문의 행간에 이어 적는다. 이러한 순서는 간찰을 개봉해서 읽어 나갈 때 접은 것을 펴서 읽은 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내지를 돌려 가며 읽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의 回文體처럼 형태가 유사하게 내지를 돌아가면서 쓰는 회문식의 배치는 간찰뿐만 아니라 언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편지의 경우 90도를 기준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며 내용을 기록했다.
김성구의 문집인 『팔오헌집(八吾軒集)』의 기록에 의하면, 김성구는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김여건(金汝鍵), 김여용(金汝鎔), 김여당(金汝鏜), 김여병(金汝鈵)이며, 딸은 조해(趙瀣)와 홍서구(洪瑞龜)에게 시집갔다. 즉 이 편지는 자신의 맏사위인 조해의 집안에 보낸 것이다.
『八吾軒集』, 金聲久,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95년 김성구(金聲久) 서간(書簡)

音信阻絶自春徂夏戀
德之懷曷嘗少弛而農家
闕{人}一不伻問此恨悠悠卽玆
溽暑
兄靜履何如女息所患近
來添減何如兒孫安否
何如種種奉慮弟僅遣
未死殘喘而諸處病
憂來攪我靈臺雖
欲寬遣而不可得奈何
奈何? 迷兒得蒙放釋

命私自感幸而還收之
啓又發云未知末稍如何
尤用憂鬱餘萬不備
伏惟
兄照六卄六弟聲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