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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 유세흥(柳世興)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F.1694.4717-20100731.0230257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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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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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유세흥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작성시기 1694
형태사항 크기: 28.5 X 47.8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94년 유세흥(柳世興) 서간(書簡)
1694년 10월 13일, 유세흥이 후일에 상대방을 찾아가서 위로할 것이라는 사항을 알릴 목적으로 미상의 상대에게 쓴 편지이다. 쓸쓸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상황에서 정중한 상대방의 편지를 받게 되어 매우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의 일상생활도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시원하게 위로가 되었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자신은 집안에 상을 당한 일이 자주하게 일어나고 있어서 정신이 없는데다가 또한 어느 어린 아이의 초상을 치러야 할 일을 당해 더욱 세상살이의 재미가 없다고 하며 자신의 요즈음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시집간 딸을 찾아보고 위로를 해야 하나 타고 갈 말[馬]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함을 알렸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로 찾아가서 반갑게 만날 것이라는 기대와 다짐을 하고 있다. 이 편지의 내용 상 받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추측해 보면 아무래도 딸을 시집보낸 집안 즉 사위 집안에 쓴 편지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어린 아이의 초상 일은 여식의 자식 즉 편지를 쓴 이의 손자뻘 되는 아이의 상사가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장인으로서 어린 자식을 잃은 사위 집안에 위로 방문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편지라고 볼 수 있다.
김동현

상세정보

1694년 10월 13일, 유세흥이 후일에 자신의 여식과 사위로 추정되는 상대방을 찾아가서 위로할 것이라는 사항을 알릴 목적으로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694년 10월 13일, 유세흥이 후일에 상대방을 찾아가서 위로할 것이라는 사항을 알릴 목적으로 수취인 미상에게 쓴 편지이다. 쓸쓸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상황에서 정중한 상대방의 편지를 받게 되어 매우 그리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의 거처함도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시원하게 위로가 되었음을 언급했다. 그러나 화자는 집안에 상사(喪事)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서 정신이 없는데다가 또한 어린 아이의 초상을 치러야 할 일을 당해 더욱 세상살이의 재미가 없다고 하며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여식을 찾아보고 위로를 해야 하나 타고 갈 말[馬]이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함을 알리고, 상황이 그렇다 하더라도 조만간에 찾아가서 반갑게 만나 회포를 풀 것이라는 기대와 다짐을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 상 이 편지의 수취인은 기록이 없어서 분명 미상이나 추측컨대 아무래도 여식을 시집보낸 집안 즉 사위에게 쓴 편지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된 어린 아이의 초상 일은 여식의 자식 즉 손자뻘 되는 아이의 상사가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장인으로서의 화자가 어린 자식을 잃은 사위 집안에 위로 방문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편지라고 볼 수 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鄭, 啓, 情에서 행을 바꿔 올려쓰는 형식으로 평궐이 이루어졌다.
이 문서는 여러 건의 편지와 함께 묶여 있다. 편지에는 특정한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풍양조씨 집안에서 보관의 편의를 위해 한데 묶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94년 유세흥(柳世興) 서간(書簡)

老廢以來謝盡諸緣惟一念憧憧
於舊遊而又有往從無由之歎
鄭重一札遠及於索居中可想此
懷之一般披讀以還不覺紙面生
毛也況審寒天
啓居順迪尤用慰瀉之至生一家
喪慽殆無虛月夏間又見瘞夭之
慘形存心死無復世況只自憐悼而
已不見女息已經累歲一往▩慰
爲計已宿而出無驢馬尙此未遂尋
常爲歎然早晩當有一行庶有
拜敍之便以是爲企耳適因
申君之歸暫此修謝不宣伏惟
情照謝狀上
甲戌陽月十三日服人柳世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