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1년 1월 7일, 김성후가 동생의 귀가와 병세 그리고 다시 출타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쓴 편지
[내용 및 특징]
1691년 1월 7일, 김성후가 동생의 귀가와 병세 그리고 다시 출타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게 되었고, 상대의 기거하는 안부가 좋음을 들으니 매우 위로된다고 했다. 또한 새해에 복을 많이 받을 것을 생각하며 경하를 드렸다. 그러나 자신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슬픈 마음이 좋지 못한 집안 상황에 대한 우려에 더쳐서 한탄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집안의 아우가 극심한 추위에도 길을 떠났다가 겨우 돌아와서는 감기에 걸려 있었고, 이제야 조금 차도가 있었음을 알렸다. 그러나 마침 일이 있어서 또 출타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이것이 상대에게 답장을 못한 사정이었음을 알렸다. 술로 인한 숙취로 대(代)로 글을 쓰게 하고 잘 살펴주길 당부했다.
平闕은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특정한 명사를 만났을 때 행을 옮겨 쓰거나 혹은 공간을 띄워서 글자를 쓰지 않는 것을 말한다. 평은 행을 바꾸는 것으로 擡頭를 말하고, 궐은 글자를 비워두는 것을 隔字 또는 間字를 말한다. 세로쓰기를 할 때, 평상적으로 시작하는 글자의 위치를 ‘平行’이라고 하는데, 대두법을 사용하여 높이 적는 위치를 ‘極行’이라고 한다. 궐은 평처럼 대두를 사용하여 극행으로 올려 적거나 행을 바꾸는 것과 달리 존대를 해야 할 용어를 띄어 적는 방법이다. 이 간찰에서는 4번에 걸쳐 줄을 바꿔서 존경을 표현했다.
이 편지는 그 당시 세시풍속에 있어 새해 인사 및 이러한 명절을 당한 개인의 감회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새해가 되면 신년을 맞이한 기쁨과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는 감회 또는 슬픔이 평소보다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는 말로는 모유지탄(慕孺之歎), 상로지감(霜露之感), 궁양미체지통(穹壤靡逮之慟) 등이 있다.
이 문서는 여러 건의 편지와 함께 묶여 있다. 편지에는 특정한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풍양조씨 집안에서 보관의 편의를 위해 한데 묶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김성구는 부친의 행장을 직접 지었는데, 그의 문집인 『팔오헌집』에 「선고가선대부행용량위부호군행장」이란 제목으로 실려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김추길(金秋吉, 1603~1686)의 자는 次說, 호는 鶴汀으로 정경세의 문인이다. 배위는 전주유씨 유화동의 딸로 3남 2녀를 두었다. 세 아들은 김성후, 김성구, 김성유이며, 딸은 곽재주와 김종호에게 시집갔다. 또한 『팔오헌집』의 이광정이 지은 김성구의 묘갈명에 의하면, 김성구는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김여건(金汝鍵), 김여용(金汝鎔), 김여당(金汝鏜), 김여병(金汝鈵)이며, 딸은 조해(趙瀣)와 홍서구(洪瑞龜)에게 시집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八吾軒集』, 김성구,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