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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0년 조학수(趙學洙) 백패(白牌)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A.1790.1100-20100731.0230222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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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교령류-백패
내용분류: 정치/행정-과거-백패
작성주체 정조, 조학수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790
형태사항 크기: 82.8 X 46.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승곡 풍양조씨 입재공파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0년 조학수(趙學洙) 백패(白牌)
1790년(正祖 140) 9월 11일에 조학수가 생원시에 2등 14인으로 합격하였다는 문서이다. 보통 대과로 불리는 문무과에서는 33인을 뽑는데 비해, 소과로 불리는 생원진사시에서는 100인을 뽑는다. 생원시는 1등 5명, 2등 25명, 3등 70명을 선발하는데, 조학수는 전체 19등으로 합격하였음을 의미한다. 대과에 급제한 이들에게는 홍패가 부여되며 합격을 말하는 용어도 급제라고 한다. 반면 소과에 합격한 이들에게는 백패가 부여되고, 용어도 입격이라고 한다. 또한 생원시에 선발된 이들은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입학해서 300일 이상을 수학하면 문과에도 응시할 수 있다. 다만 성균관에서의 공부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문과에 응시할 수 도 있다. 조학수가 생원시에 합격한 것은 그의 나이 50세인데, 당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조금 늦은 감이 있으며, 『풍성세고』의 『가은고』는 그의 문집인데, 이 생원시를 끝으로 더 이상 다른 시험을 보았다는 기록은 없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古文書硏究』 9·10, 鄭求福, 한국고문서학회, 1996
『古文書硏究』 30』, 유지영, 한국고문서학회, 2007
『조선시대 생원진사 연구』, 최진옥, 집문당, 1998
『풍성세고』, 趙靖 등, 1921
정명수

상세정보

1790년 9월 11일, 정조가 유학 조학수에게 생원 2등 제14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생원시 합격 증서
내용 및 특징
1790년(正祖 140) 9월 11일에 유학 趙學洙가 生員試에 2등 14인으로 합격하였음을 증명하는 문서이다. 문무과[大科]가 33인을 뽑는데 비해 생원진사시[小科]에서는 100인을 뽑았는데, 1등이 5명, 2등이 25명, 3등이 70명이다. 조학수는 생원시에 2등 제14인으로 합격하였으므로 이는 전체 19등으로 합격하였음을 의미한다. 뒷면 표지에는 황색 종이 위에 ‘幼學趙學洙生員二等第十四人’을 한 줄로 써서 생원시 급제자의 당시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였는데, 생원시 합격 당시 조학수는 幼學의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생원시에 합격하면 이들에게는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이 부여되며, 성균관에 입학해 300일 이상 수학하면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생원시에 합격했다는 것은 관직으로 나아갈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므로 바로 문과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문과합격자에게 발급되는 홍패에서 생원이나 진사가 아닌 幼學의 신분으로 합격한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백패는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 내리는 합격 증서로 흰 종이에 쓰며, 연호의 두 번째 글자 위에 ‘科擧之寶’를 찍는다. 경국대전 禮典에 백패에 관한 문서식이 규정되어 있는데 문무과 합격자에게 발급한 홍패식과 유사하다. 다만 합격증서의 색깔과 합격을 뜻하는 용어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무과 합격자에게는 ‘及第’라고 하고, 생원진사시 합격자에게는 ‘入格’이라고 써서 이들을 구분하였다.
조정(趙靖)을 비롯해 그 후손들의 문집을 모아 놓은 『풍성세고』에 의하면, 조학수는 조석우의 둘째 아들로, 처음 이름은 표연(豹然)이며, 자는 회지(晦之), 호는 가은(可隱)이다. 『풍성세고』의 권 11에 『가은고』가 수록되어 있는데, 독서에 정진하여 집안의 노비들까지 글을 따라 읊을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또한 50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는데, 세 번째 어머니인 김씨가 매우 기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석우의 첫 번째 부인은 풍산유씨로 유후장의 딸이고, 두 번째 어머니는 밀양박씨 박성환의 딸이며, 세 번째 어머니는 의성김씨 김여만의 딸이다.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古文書硏究』 9·10, 鄭求福, 한국고문서학회, 1996
『古文書硏究』 30』, 유지영, 한국고문서학회, 2007
『조선시대 생원진사 연구』, 최진옥, 집문당, 1998
『풍성세고』, 趙靖 등, 1921
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0년 조학수(趙學洙) 백패(白牌)

敎旨
幼學趙學洙生員二等
第十四人入格者
乾隆五十五年九月十一日
幼學趙學洙生員二等第十四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