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 조석우(趙錫愚) 고신(告身)
1759년(英祖 35) 윤6월 6일에 영조 임금이 조석우에게 중훈대부 행 평안도도사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도사는 관찰사를 보좌하여 함께 문서와 장부를 처결하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아사라고도 불렸다. 정5품의 병조정랑에 임명된지 3일만에 다시 평안도도사에 임명된 것인데, 그 내용은 조석우의 문집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유치명이 지은 행장에는 사은하고 물러나며 벗에게 말하기를, 내 한번 관서에 나아가 태백산에 들어가서 단군고사의 통군정을 방문해 보고자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정종로가 지은 「묘갈명」에는 평안도도사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이날 말을 타고 고향에 돌아와 거친 밥과 국을 먹으며 태연히 자적하며 다시 벼슬에 나갈 뜻이 없었으며 동생인 조석로와 함께 책상을 나란히 하고 공부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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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