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651년 유의하(柳宜河) 고신(告身)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A.1651.1100-20100731.018722200213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정치/행정-임면-고신
작성주체 유의하, 이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651
형태사항 크기: 48.5 X 57.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충효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651년 유의하(柳宜河) 고신(告身)
1651년 10월 28일에 이조에서 효종임금의 명령을 받아 통사랑 유의하를 무공랑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통사랑은 정8품계이고, 무공랑은 정7품계이다. 발급이유는 ‘부 전현감 유원지 전생주부 시 갑6 을3 별대가’로 기록되었다. 현감을 지낸 유원지가 전생서주부에 재직하던 1634년 6월과 1635년 3월에 별가받은 것을 그의 아들인 유의하에게 대신 가자하여 무공랑에 임명하는 것이다. 유의하는 지난 19일과 25일에도 대가를 받아 품계가 높여졌는데, 이번에도 두 건의 별가를 대신 받았기 때문에 품계가 두 단계 높아졌다. 이 문서는 5품 이하의 관원에게 발급되는 문서형식으로, 대간의 심사를 거친다. 문서 발급에는 이조 또는 병조의 당상관과 낭관 1명이 참여하는데, 이 문서는 이조참판과 이조좌랑 2명이 참여하였다. 당시 이조참판은 최혜길이고, 이조좌랑은 김휘이다.
정명수

상세정보

1651년 10월,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통사랑 유의하를 무공랑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651년(孝宗 2) 10월 28일에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通仕郞柳宜河務功郞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통사랑은 정8품계이고, 무공랑은 정7품계이다. 유의하는 동월 19일에 學生의 신분으로 정9품 종사랑에 加資되고, 동월 25일에 정8품 통사랑에 가자되었는데 이번에 또 다시 2품계 위인 무공랑에 가자되어 이 문서를 발급받은 것이다.
발급 이유는 바로 연호 왼쪽 옆에 작은 글자로 ‘父前縣監柳元之典牲主簿三別代加’라 쓴 것이 그것이다. 이는 유의하의 부친인 전 현감유원지전생서주부 재임시인 甲字가 들어간 해 6월과 乙字가 들어간 해 3월에 別加받은 것을 아들인 유의하에게 대신 가자하여 내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유원지전생서주부에 임명되었다는 문서나 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유의하에게 유원지가 별가받은 것을 앞선 연대순으로 차례로 대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서 말한 갑년은 1634甲戌年을, 을년은 1635乙亥年을 말하는 것인 듯하다. 유의하는 2건의 별가를 대가받았으므로 정8품에서 2품계 위인 정7품을 올라간 것이다.
임명관련 교지의 경우 정기적인 인사를 통한 임명이 아닌 경우 그 사유를 문서 왼쪽 연호의 두 번째 글자 옆에 작게 내려 쓰는데, 유의하의 경우에도 정기적인 인사로 인한 가자가 아닌 부친의 별가를 대신 받은 것이므로 그 사유를 왼쪽에 명시하고 있다. 별가는 정기 인사이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나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 공을 세웠을 때, 나라의 행사에 수고하였을 때 특별히 散階를 더해주는 제도이다. 별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들·사위·아우·조카 등 누구에게나 대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대가의 폐단을 막기 위해 대가로 올라갈 수 있는 품계를 정5품 通德郞까지로 한정하였으며, 반드시 한 품계씩 올려주도록 하고 두 품계 이상을 한꺼번에 올려주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문서는 5품 이하의 문무관원에게 발급되는 敎旨이다. 4품 이상이 臺諫의 署經을 거치지 않고 왕명에 의해 바로 임명되는데 비해, 5품 이하 9품까지는 대간의 서경을 거쳐 이조,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한다. 문서식도 4품 이상 관원에게 발급하는 것과는 다르다. 4품 이상 관원에게 발급하는 告身에서 문서 첫머리에 ‘敎旨’를 쓰는 것과 달리 5품 이하 관원에게 발급하는 고신에는 이조병조가 왕의 명을 받들어 임명장을 발급한다는 의미의 ‘奉敎’를 쓴다. 문서 발급에 있어서 착명은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낭관 각 1인이 하였는데, 이 문서의 발급에는 이조참판이조좌랑 2명이 참여하였다. 당시 이조참판崔惠吉, 이조좌랑金徽이다. 관품과 관직에 차이가 날 경우에는 관직명 앞에 ‘行’과 ‘守’자를 넣어 구분하였다.
權榘(1672~1749)의 『屛谷先生文集』에는 「內舅翊贊柳公行蹟」이 있다. 이것은 권구가 내구(외삼촌)인 유의하의 행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유의하의 자는 子安, 호는 愚訥齋로 어머니는 金是樞의 딸이다. 柳袗‧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유진에서 유원지, 유의하로 이어지는 가학을 형성하였다.
『拙齋集』(『퇴계학자료총서』32~33) , 유원지,
『屛谷先生文集』, 권구, 1797
崔承熙, 『진단학보』 60, 진단학회, 1985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651년 유의하(柳宜河) 고신(告身)

吏曹順治八年十月
二十八日奉
通仕郞柳宜河
務功郞
順治八年十月日
父前縣監柳元之典牲主簿三別代加
正郞
判書
參判[押]
參議臣趙
佐郞[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