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566년 이홍(李洪) 고신(告身)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2+KSM-XA.1566.1100-20100731.042022200108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정치/행정-임면-고신
작성주체 이홍, 이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566
형태사항 크기: 49 X 70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양월 경주이씨 양월문중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양월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566년 이홍(李洪) 고신(告身)
1566년 1월 5일에 이조에서 명종임금의 명령을 받아서 중추부녹사 승사랑 이홍을 종7품 계공랑에 임명한 것으로, 문서발급은 5월에 이루어졌다. 연호 왼쪽에 ‘계 12 을 정별가병초’라고 별가 사유를 기록하고 있다. 계자가 들어간 해 12월과 을자가 들어간 해 정월에 별가를 받아서 초자되었지만, 고신은 5월에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왕명을 받아 문서를 발급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당일 또는 수일 이내이다. 하지만 이 문서의 경우 4개월이라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고신발급이 이루어 졌으며, 발급에는 이조참판과 이조좌랑 2명이 참여하였다. 당시의 이조참판은 정종영이었다.
『경주이씨세보』, 경주이씨종친회,
『경주이씨양월문중』, 한국국학진흥원, 2009, 성심
『진단학보』 71, 한우근, 진단학회, 1981
정명수

상세정보

1566년 5월,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중추부녹사승사랑이홍계공랑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566년(明宗 21) 1월 5일에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中樞府錄事承仕郞李洪을 종7품 啓功郞에 임명하고 동년 5월에 발급한 문서이다. 이홍字가 들어간 해 12월과 字가 들어간 해 정월에 別加받은 것을 합해 이때에 함께 超資된 것이다. 연호 왼쪽 옆에 작은 글자로 ‘十二正別加並超’라 쓴 것이 바로 별가 사유이다. 이홍은 전년 12월 16일에 이미 종9품 장사랑에서 종8품 승사랑으로 2품계 자급이 올라갔는데 한 달 뒤에 다시 예전에 별가 받은 것을 합산해 가자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告身은 5월이 되어서야 받았다. 일반적으로 이조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고신을 발급할 때 소요되는 시간은 당일에서 며칠 이내인데 이 문서는 이조에서 왕명을 받든 것이 1월 5일이고 고신 발급은 5월이 되어서야 이루어져서 고신 발급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임명관련 교지의 경우 정기적인 인사를 통한 임명이 아닌 경우 그 사유를 문서 왼쪽에 연호보다 한 자 내려서 쓰는데, 이홍의 경우에도 정기적인 인사로 인한 가자가 아닌 별가를 합산하여 받은 것이므로 그 사유를 왼쪽에 명시하고 있다. 별가는 정기 인사이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나 왕실에 경사가 있을 때, 공을 세웠을 때, 나라의 행사에 수고하였을 때 특별히 散階를 더해주는 제도이다. 별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들·사위·아우·조카 등 누구에게나 代加할 수가 있었다.
녹사조선시대 중앙 관서의 상급 胥吏職으로, 의정부중추부에 나뉘어 소속되었으며, 문반의 관부에는 의정부에서, 무반의 관부에는 중추부에서 나누어 파견하였다. 이홍은 1564년 2월에 중추부녹사로서 전연사참봉에 임명되었는데 이후 이홍이 받은 3차례의 고신에는 줄곧 중추부녹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전연사참봉직은 잠시 거쳐 간 관직으로 보인다. 조선초기에는 녹사가 士族의 자제에서 선발되었으며, 주로 하는 일은 문서의 취급과 기록 및 연락 업무를 담당하거나 대신의 명을 받아 공문서의 전달이나 구두 연락의 업무 및 기타 잡무를 담당하였다.
이 문서는 5품 이하의 문무관원에게 발급되는 敎旨이다. 4품 이상이 臺諫의 署經을 거치지 않고 왕명에 의해 바로 임명되는데 비해, 5품 이하 9품까지는 대간의 서경을 거쳐 이조,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한다. 문서식도 4품 이상관원에게 발급하는 것과는 다르며, 문서 발급에 있어서 착명은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낭관 각 1인이 하였다. 이 문서의 발급에는 이조참판이조좌랑 2명이 참여하였는데, 당시 이조참판鄭宗榮이다.
보물 보물 제1474-1-8호로 국가지정문화재에 등록되었다. 『경주이씨세보』에 의하면, 이홍의 5대조는 한성판윤을 지낸 이지대(李之帶)로 경주에 낙향하여 불국사 남쪽에 터전을 잡았으며, 할아버지 이형림(李亨林)은 안강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이수광(李秀光)이고, 아들은 이경해(李景海), 이경한(李景漢), 이경호(李景湖), 이경택(李景澤)이다. 『세보』에는 ‘신미(1511)’년에 출생했다는 기록만 있고, 몰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東亞文化』 10, 한영우,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1971
『진단학보』 60, 崔承熙, 진단학회, 1985
『增補版 韓國古文書硏究』, 崔承熙, 지식산업사, 1989
『古文書硏究』 9·10, 鄭求福, 한국고문서학회, 1996
『古文書硏究』 30, 유지영, 한국고문서학회, 2007
『古文書硏究』 31, 박준호, 한국고문서학회, 2007
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566년 이홍(李洪) 고신(告身)

吏曺嘉靖四十五年
正月初五日奉
中樞府錄事承仕
李洪啓功郞

嘉靖四十五年五月日
十二正別加並超
判書
參判[押]
參議
正郞
佐郞[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