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4년 2월 1일,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중추부녹사 학생 이홍을 장사랑전연사참봉에 임명하는 문서
내용 및 특징
1564년(明宗 19) 2월 1일에 이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中樞府錄事 學生 李洪을 종9품 將仕郞典涓司參奉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조선시대에는 文科, 武科, 蔭職을 통해 관직에 진출하였는데 초기에는 그 외에도 胥吏取才를 통해 임용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홍이 바로 그런 경우로, 이홍은 無品인 錄事職을 거쳐 종6품 宗簿寺主簿에까지 올랐다.
녹사는 조선시대 중앙 관서의 상급 胥吏職으로, 의정부와 중추부에 나뉘어 소속되었으며, 문반의 관부에는 의정부에서, 무반의 관부에는 중추부에서 나누어 파견하였다. 조선초기에 녹사는 8~9품의 품계를 지닌 녹사와 품계가 없는 녹사로 구분되었는데 이홍은 이때에 와서 종9품 장사랑전연사참봉에 임명된 것을 보면 품계가 없는 녹사로서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초기에는 녹사가 士族의 자제에서 선발되었으며, 주로 하는 일은 문서의 취급과 기록 및 연락 업무를 담당하거나 대신의 명을 받아 공문서의 전달이나 구두 연락의 업무 및 기타 잡무를 담당하였다. 전연사는 조선시대 공조 산하의 관서로 궁궐을 청소하며 영선을 관장하였다.
이 문서는 5품 이하의 문무관원에게 발급되는 敎旨이다. 4품 이상이 臺諫의 署經을 거치지 않고 왕명에 의해 바로 임명되는데 비해, 5품 이하 9품까지는 대간의 서경을 거쳐 이조,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한다. 문서식도 4품 이상관원에게 발급하는 것과는 다르며, 문서 발급에 있어서 착명은 이조나 병조의 당상관과 낭관 각 1인이 하였다. 이 문서의 발급에는 이조참의와 이조정랑 2명이 참여하였는데 당시 이조참의는 睦詹이고, 이조정랑은 尹斗壽이다.
보물 제1474-1-6호로 국가지정문화재에 등록되었다. 『경주이씨세보』에 의하면, 이홍의 5대조는 한성판윤을 지낸 이지대(李之帶)로 경주에 낙향하여 불국사 남쪽에 터전을 잡았으며, 할아버지 이형림(李亨林)은 안강에 처음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이수광(李秀光)으로, 자는 희고(希古)이고 배위는 도안안씨 안숙량(安淑良)의 딸, 계배는 영양이씨 진사 이예원(李禮元)의 딸이다. 형은 이연(李淵), 이진(李津), 이항(李沆)이고, 동생은 이급(李汲)이다. 4남 1녀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을 형 이진(李津)에게 보내 후사를 잇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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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