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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당김공묘갈명(虛白堂金公墓碣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I.0000.0000-20090831.0015279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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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시문류-묘문
내용분류: 개인-전기-묘문
작성주체 정사룡, 김양진
형태사항 크기: 29.0 X 195.3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허백당김공묘갈명(虛白堂金公墓碣銘)
정사룡(鄭士龍)김양진(金楊震)의 일생을 정리하여 적은 묘갈명(墓碣銘)이다. 김양진안동부풍산현 사람으로 9세부터 글을 깨우치고, 어진 선비들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했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예문관검열을 지냈으며, 연산군의 정치에 대응하다가 고초를 당했다고 한다. 여러 번 유배를 갔다가 중종반정 이후에 풀려나서 형조좌랑경상도사사옹원검정사간원대사간영해부사 등을 역임했다고 소개했다. 부인은 양천허씨이며 2남 3녀를 두었다고 했다.
서진영

상세정보

김양진의 일생을 적은 정사룡의 묘갈명
정사룡(鄭士龍)김양진(金楊震)의 평생 내력을 정리한 허백당김공묘갈명(虛白堂金公墓碣銘)이다. 김양진안동부풍산현 출신으로 조상들이 대대로 이곳에 살면서 고려조에서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출중한 벼슬을 역임했다고 하였다. 9세부터 글을 깨우쳤으며 어진 선비들로부터 학문을 전수 받았다고 했다. 이후 진사시에 합격하여 예문관검열을 시작으로 해서 연산군의 무단 정치에 대응하다가 참형을 당할 위기를 맞았지만 의연히 대처하는 선비의 기개를 보였다고 하였다. 여러 곳으로 유배지를 옮겨 다니다가 중종반정 이후에 복권이 되어 형조좌랑경상도사사옹원검정사간원대사간영해부사 등을 역임했다고 소개했다. 직임을 수행할 때에 언제나 청렴한 공직자의 신분으로 품위를 지켰으며 그의 부인은 양천허씨이며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고 했다.
김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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