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李喆淵 외 45인 등이 도산의 隴雲精舍를 보수하기 위해 靑巖公宅에 보낸 통문
1963년 11월 李喆淵 외 45인 등이 도산의 隴雲精舍를 보수하기 위해 靑巖公宅에 보낸 통문이다.
이 통문을 작성하게 된 것은 도산의 隴雲精舍는 대대로 이황선생이 及門諸賢들과 학업을 익히던 곳이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건물이 쇠락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지난번 정부에서 수리할 비용을 주어 정사와 담장은 새롭게 고쳤으나 本孫께서 정사를 고치자고 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자신들이 정사와 거리상 가깝고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고 있으니 이와 관련된 일은 자신들에게 맡기고 여러 집안에서는 돈을 추렴하여 큰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농운정사는 도산서원 서쪽에 위치한 학생들의 숙소로 1561년 완성하였다. 퇴계 이황 선생이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 工자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동쪽 마루를 時習齋, 가운데 온돌방을 止宿寮, 서쪽 마루를 觀瀾軒이라고 부른다. 통문의 작성자 중 이희욱(1894~1974)은 본관은 영천, 자는 國瑞, 호는 忍堂으로 權相翊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芝南世稿』가 있다.
이 편지는 가문에 중대한 일이 있을 때 가문의 여러 지파들이 모여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공의라고 하여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통문도 공의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