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월 30일에 족종 이현실이 영덕 인량의 이병칠에게 대대로 살아왔던 그 곳을 떠나 늘그막에 영양 석포에 정착하게 되어 느끼는 울울한 감정을 쓰면서 상대방 측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27년 1월 30일에 族從 李鉉實이 영덕 인량에 거주하는 李秉七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급자 이현실(1855-1939)은 淸溪公 李時淸(1580-1610)의 支孫으로, 청계공의 장손자 李楷(1618-1657)의 다섯째 아들 之炳의 후손이다. 수취인인 이병칠(1856-1936)이 雲嶽 李涵(1544-1632)의 주손으로, 청계공의 12대 종손이다. 두 사람의 본관은 載寧이며, 이현실은 자가 鼎甫, 호가 翊南이고, 이병칠 자가 景斗이다. 이들은 조상대부터 대대로 세거해왔던 영덕의 인량리에서 친족 간의 정을 나누며 살았었는데, 이현실이 늘그막에 영양 석포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던 것 같다. 이 편지는 이현실이 영양으로 옮겨간 직후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면서 느끼는 절절한 심정을 가득 담아 이병칠에게 보낸 것이다.
첫머리는 인생에서의 만남과 이별이 덧없는 세상에 늘상 있는 일임을 알지만 자신들에게 닥칠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냐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400년 가까이 대대로 살아왔던 곳이자 자신이 팔십 평생을 나고 자라고 늙었던 곳인데, 이러한 곳을 버리고 떠나왔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으며 자신도 그러하지만 떠나보낸 상대방도 쉽게 잊을 수는 없을 것이라 하였다. 다음으로는 이병칠과 그 집안 그리고 영덕 인량의 친척들의 안부를 차례로 묻고 있으며, 더불어 자신의 근황을 적고 있다. 무슨 연고로 늘그막에 이렇게 떠나왔나 싶지만, 그래도 형제들과 삼십년을 단란하게 모여 살다가 떠나온 것이니 그나마 스스로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며 곤궁하게 지내는 것에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石兒가 자신을 따라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 하였다. 끝으로 이병칠에게 宗堂에서 친척들을 모아놓고 강론을 한 번 해주시면 좋겠다고 부탁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