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925년 김제홍(金濟鴻) 위장(慰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925.4717-20090831.002825700372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위장
내용분류: 종교/풍속-관혼상제-위장
작성주체 김제홍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25
형태사항 크기: 32 X 5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천 광산김씨 설월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5년 김제홍(金濟鴻) 위장(慰狀)
1925년 10월 14일, 김제홍이 족형의 상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자신의 근황과 함께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장사지내는 일이 아마도 유감이 없이 잘 될 것이나 어떻게 사정에 맞게 예대로 했는지 물어보면서, 억지로 미음이라도 먹고 선친이 남긴 뜻을 체득하고, 옛 사람이 남긴 경계를 범하지 말기를 천만 바란다고 하였다. 자신이 곧 조문하러 가야하겠지만 전에는 성묘하느라 힘썼고 뒤에는 가벼운 병에 걸려 스스로 수 백리 추운 길을 갈 수 없어서 상사에 참석하지 못한 까닭을 말하였다. 아이를 보내 대신 조문을 하게 하였지만, 또 많은 날이 지난 뒤에 어찌 스스로 핑계를 대며 인정의 도리에 자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늙은이 본인의 마음은 슬프고 부끄러워 다만 이 몇 자를 쓴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을 겨를이 없으니 잘 헤아려주시고 용서해달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925년 10월 14일, 김제홍이 족형의 상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자신의 근황과 함께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25년 10월 14일에 김제홍이 족형의 상사에 대해 보낸 위문 소장이다. 상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자신의 근황과 함께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처음 부분에 발급인은 상대방에게 상사가 천만 뜻밖에 일어나니 통곡하고 통곡한다고 편지에서 말하였다. '先府君兄主喪事'라고 하니, 돌아가신 분은 상대방에게는 '先府君' 즉 아버지가 되고, 발급인 본인에게는 형뻘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 길이 멀고 병환이 낫지 않았다고 하는데 막막하게 들어서 알지 못했다고 하였다. 재앙과 변고로 잡고 울던 사이에 전부다 물정에 모르고 있다가 뒤에서야 부음을 받았으니 자신이 도리어 길 가는 사람과 같아버렸다고 하였다. 덕의는 하늘이 도와주는 것에서 나오고 근력은 사람의 강건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더니 갑자기 지금 무슨 일이냐고 하였다. 자신은 통곡하고 통곡하며 오장이 찢어질듯하다고 표현하였다.
뒤 이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이 아마도 유감이 없이 잘 될 것이나 장사지내는 일은 큰일이고, 시제이며, 묘지가 귀한데, 그 어떻게 사정에 맞게 예대로 했는지 물어보았다. 갑자기 큰 상을 당하여 효도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망극하고,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억지로 미음이라도 먹고 선친이 남긴 뜻을 체득하고, 옛 사람이 남긴 경계를 범하지 말기를 천만 바란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걱정하고 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자신이 곧 조문하러 가야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전에는 성묘하느라 힘썼고 뒤에는 가벼운 병에 걸려 스스로 수 백리 추운 길을 갈 수 없었다고 하면서 이렇고도 인정이 도탑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아이를 보내 대신 조문을 하게 하였지만, 또 많은 날이 지난 뒤에 어찌 스스로 핑계를 대며 인정의 도리에 자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늙은이 본인의 마음은 슬프고 부끄러워 다만 이 몇 자를 쓴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을 겨를이 없으니 잘 헤아려주시고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김제홍(1857~1929)은 본관은 光山이고, 자가 溟擧이다. 부인은 안동김씨이다.
이 편지는 위장의 형식을 띠고 있다. 위장은 일반 서간에 비해 특별한 서식을 갖추고 있는데, 일반 서간에 비해 글씨를 작게 쓰고 초서가 아닌 정서를 쓰며 지면의 상단을 확연하게 띄운다. 이 편지에서도 그러한 형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편지의 뒷면에 피봉으로 보이는 부분에는 '謹奉疏'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아도 위장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선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25년 김제홍(金濟鴻) 위장(慰狀)

謹奉疏。
濟鴻頓首。痛哭言。家門凶禍。
先府君兄主喪事。出於千千萬萬夢寐之外。
痛哭痛哭。夫何言復何言。道里修夐。病患
彌留之日。漠未聞知。禍變拚號之際。全是
茫昧。後時承實。反同路人。惟念德義之
自天隲佑。筋力之出人康健。那意遽有今
日。吾門陽九之厄。竟不能憖遺。痛哭痛哭。五內如
割。初終凡百。想無遺憾。而襄奉大事。時制
也。山窮也。其何能稱情如禮乎。猝當
巨創。孝思罔極。崩隕何以堪處。惟望强加
糜飮。克體遺意。無犯古戒。千萬千萬。。前汨省
楸。後嬰採薪。無以自力於數百里寒程。此而曰
摯情而寄在乎。辜負幽明。西望失聲。送
兒替喉。又此多日。逾時之后。烏可自文。而
處以人理也。老懷
悲忸。只此數字。
寒暄有不暇也。
哀諒原恕否。
謹奉疏。不宣
疏式。惟希
哀在。
乙丑 十月 十四日。老族從 濟鴻 頓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