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0월 14일, 김제홍이 족형의 상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자신의 근황과 함께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25년 10월 14일에 김제홍이 족형의 상사에 대해 보낸 위문 소장이다. 상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자신의 근황과 함께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처음 부분에 발급인은 상대방에게 상사가 천만 뜻밖에 일어나니 통곡하고 통곡한다고 편지에서 말하였다. '先府君兄主喪事'라고 하니, 돌아가신 분은 상대방에게는 '先府君' 즉 아버지가 되고, 발급인 본인에게는 형뻘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 길이 멀고 병환이 낫지 않았다고 하는데 막막하게 들어서 알지 못했다고 하였다. 재앙과 변고로 잡고 울던 사이에 전부다 물정에 모르고 있다가 뒤에서야 부음을 받았으니 자신이 도리어 길 가는 사람과 같아버렸다고 하였다. 덕의는 하늘이 도와주는 것에서 나오고 근력은 사람의 강건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더니 갑자기 지금 무슨 일이냐고 하였다. 자신은 통곡하고 통곡하며 오장이 찢어질듯하다고 표현하였다.
뒤 이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이 아마도 유감이 없이 잘 될 것이나 장사지내는 일은 큰일이고, 시제이며, 묘지가 귀한데, 그 어떻게 사정에 맞게 예대로 했는지 물어보았다. 갑자기 큰 상을 당하여 효도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망극하고,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기도 하였다. 억지로 미음이라도 먹고 선친이 남긴 뜻을 체득하고, 옛 사람이 남긴 경계를 범하지 말기를 천만 바란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걱정하고 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자신이 곧 조문하러 가야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전에는 성묘하느라 힘썼고 뒤에는 가벼운 병에 걸려 스스로 수 백리 추운 길을 갈 수 없었다고 하면서 이렇고도 인정이 도탑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아이를 보내 대신 조문을 하게 하였지만, 또 많은 날이 지난 뒤에 어찌 스스로 핑계를 대며 인정의 도리에 자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늙은이 본인의 마음은 슬프고 부끄러워 다만 이 몇 자를 쓴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을 겨를이 없으니 잘 헤아려주시고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끝을 맺고 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김제홍(1857~1929)은 본관은 光山이고, 자가 溟擧이다. 부인은 안동김씨이다.
이 편지는 위장의 형식을 띠고 있다. 위장은 일반 서간에 비해 특별한 서식을 갖추고 있는데, 일반 서간에 비해 글씨를 작게 쓰고 초서가 아닌 정서를 쓰며 지면의 상단을 확연하게 띄운다. 이 편지에서도 그러한 형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편지의 뒷면에 피봉으로 보이는 부분에는 '謹奉疏'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아도 위장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光山金氏禮安派譜』,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