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3월 9일, 李壽岳이 堂兄의 상사를 위문하면서 달려가서 돕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기 위해 李生員에게 보내는 편지
1918년 3월 9일에 李壽岳이 堂兄의 상사를 위문하면서 달려가서 돕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기 위해 李生員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덕문의 흉화로 당형 백씨가 끝내 일어나지 못하니 단정하고 발라 어느 곳에서 이런 분을 다시 얻겠느냐는 아픔이 절실한데, 하물며 동기로 4, 50년 동안 부모님이 살아계신 즐거움을 함께 누렸고 또 노년에 서로 수응하고 의뢰하며 지내기에 형 같은 분이 없으니 그 슬픔이 어떻겠느냐고 안타까워하였다. 울부짖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어떻게 억누르며 初終 절차는 잘 계획하는지, 슬픔과 향하는 마음을 가눌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신은 쇠약하여 달려가 돕지 못하며, 아이와 손자도 집짓는 일로 어지러워 몸을 빼내지 못해 서로 돕지 못하니 부끄러울 뿐이라고 사죄하였다.
발신자인 이수악(1845∼1927)은 본관은 載寧, 자는 致崇, 호는 于軒이다. 일찍이 가학을 이어받아 經史에 밝았고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1886년 대원군이 유폐당하여 왕세자의 책봉에 참여하지 못한 일의 부당함을 들어 상소한 일로 인하여 明川으로 유배당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列邑에 통문을 돌려 擧義할 것을 촉구하고, 1896년 영덕, 영해의 의병장이 되어 활약하였다.
1차 작성자 : 정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