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912년 이재명(李在明)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912.4717-20090831.002325700005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재명, 이○○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작성시기 1912
형태사항 크기: 26 X 37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가송 영천이씨 농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12년 이재명(李在明) 서간(書簡)
1912년 11월 5일에 이재명영해 익동 마을의 재령이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하연 이중량 선조의 행장에 대한 집안의 논의, 벽오 이문량의 행장을 가는 인편에 베껴 보내 달라는 부탁, 간재 이덕홍의 묘도비를 바꾸고 지낸 고유제 행사에 500~600여명이 모인 사실, 연보 배포를 중지 해달라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조선시대 간찰 서식 연구』, 김효경,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912년 11월 5일에 이재명이 연보 배포를 중지해 달라고 하면서 영해 翊東[호지마을]의 재령이씨에게 보낸 편지.
1912년 11월 5일에 李在明이 연보 배포를 중지해 달라고 하면서 영해 翊東[호지마을]의 재령이씨에게 보낸 편지로, 賀淵 李仲樑의 행장에 대한 논의, 艮齋 李德弘의 묘도비 고유제 행사에 많은 인원이 모였다는 사실 등도 함께 적었다.
편지의 서두에는 상대방과 상대방 식구 및 손자들이 추운 날씨에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이어 본인의 공부는 진중하지 못하여 문중의 바람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편지의 본론에는 네 가지를 언급했다. 첫째는 하연 이중량(1504~1582)의 행장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溪' 자가 들어가는 할아버지께서 우선은 그대로 두라고 해서 그것을 상자 속에 보관한지 여러 해가 지났다고 했다. 아버지와 집안의 여러 사람은 행장을 쓰고 싶었으나 '溪祖'가 그것에 대해 아무 말씀이 없어서 한탄스럽지만, '溪祖'에게 마땅히 다시 아뢸 계획이라고 했다.
이중량영해 인량리에 정착하여 삼벽당을 건립한 인물이다. 그는 聾巖 李賢輔(1467~1555)의 넷째 아들로, 1528년(중종 2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34년(중중 29) 문과 급제했으며, 강원도 관찰사를 비롯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두 번째는 '雲翁'이 찬한 碧梧 李文樑(1498∼1581)의 행장 끝 부분에 본인의 선조인 '구완옹'에 대한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보지 못했으니, 이번의 인편에 베껴 보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문량은 농암 이현보의 아들이고, '구완옹'은 李萬熻(1740∼1814)으로 자는 熙老이고, 호는 苟完齋이다.
셋째는 간재 이덕홍(1541∼1596)의 묘도비 개갈 고유제 행사에 모인 인원이 500~600여명으로 그를 흠모하는 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묘도비의 글은 봉화 酉谷權相翊이 지었고, 글씨는 예안 下溪李康鎬가 썼다고 했다. 이덕홍의 자는 宏仲으로, 이황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열중하였으며, 특히 심성론과 역학 방면에 조예가 깊었다.
마지막은 연보 반포를 중지해 달라는 내용이다. 본인이 이미 9월 8일 溪上에 있을 때 부친 편지에 연보의 반포를 중지해달라고 했는데, 그 편지를 읽었는지 물어보았다. 연보를 반포하게 되면 상대 마을뿐만 아니라 본인의 아버지도 비난을 받을 것이니 거듭 중지해달라고 하면서, 상대방 마을로 돌아가는 객에게 이 편지를 부친다고 했다.
편지의 발급자 이재명이현보의 15대 종손으로, 예안에 거주했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12
『조선시대 간찰 서식 연구』, 김효경,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1차 작성자 : 김명자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12년 이재명(李在明) 서간(書簡)

翊東。靜几下。侍人 謹封。
坤氷纔凝。復陽欲動。
靜裏節度。卽今何如。室燠窓厚。而
雪夜霜朝。冷風不受否。伏慕不已。
寶庇洎各家都候。俱在一安。族孫
重省愼節。恒鮮寧日。而觸寒又添。尤切
一懼。惟三候諸狀。粗遣。是幸。尋
數之業 隨暇看讀。然只是焂來焂去
之影子。奚有於實得哉。關門獨坐。孤
隨之憂。政爾難裁。些少之學。安能副
乎吾宗千人之顒望也。承賀祖家狀之敎。
甚蹴踖也。以後本。嘗告于溪祖。溪祖。
有曰 姑置之。故秘之篋笥中者。已有年
矣。家大人及鄙中僉意。咸以爲如後本而後。庶
可得無闕漏之歎。而
獨溪祖。黙之。甚
恨甚恨。終當更白于溪祖計耳。又雲■■翁
所撰碧梧先祖家狀末。有曰。吾苟完公有
識跋。可攷也。平陵記行下。疑有苟完翁。所著
跋文。而尙未見焉。甚可恨也。此便謄送。伏望
伏望。去月初四日。行艮齋墓道改碣告由祭。
會者多至五六百人。可知今世。亦有慕賢
者多矣。文乃酉谷權相翊氏所撰。筆乃下溪
李康鎬氏所書也。年譜。已盡頒矣。浦叔八
月下書。有以南鄕所去諸帙。徧布貴鄕。所未盡
諸家云爾。故九月八日。在明。在溪上付書。以止之。其
間果登覽否。若將以彼而頒此。則門中老
少之誚。不獨歸於貴邨。吾大人。亦將受誚
矣。幸勿爲之。伏望伏望。書則付之湖邨
歸客。無浮沈之患歟。餘。伏祝
氣候萬謐。不備進白。
壬子 至月 五日。族孫 在明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