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4월 4일, 金達永 외 3인이 鶴湖 金奉祖의 신도비를 세우는 일에 축하와 부조를 보내기 위해 五美洞의 豊山金氏측에 보낸 편지
1897년 4월 4일에 金達永 외 3인이 鶴湖 金奉祖의 신도비를 세우는 일에 축하와 부조를 보내기 위해 五美洞의 豊山金氏측에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의 안부를 물은 후 先先生 학호 김봉조 공의 묘도의 신도비를 세우는 일을 언급하였다. 이렇게 수백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 이루어진 사실은 상대 측 여러 존자들의 성효가 평소보다 뛰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치하하였다. 그러나 김달영 등은 가서 일을 도와야 하나 각기 노쇠하고 병이 나서 가지 못하고, 대신 한 젊은이를 보낸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성대한 의식을 잘 치르기를 바라고 있다.
이 편지는 의성 김씨 문중과 풍산 김씨 문중과의 혼반관계 또는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안동 지역의 여러 명문가 가운데 특히 이 두 문중은 비록 선현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영남의 유림으로서 큰 선현을 기리는데 아낌없이 지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사회에 유림활동과 문중활동이 거의 일치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마을사나 미시사 분야로 가치가 있는 문서가 될 수 있다.
金達永(1828~?)은 자는 應三, 호는 竹南, 본관은 義城이다. 부친은 建銖이다. 1852년 式年試 2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였다. 金祖永(1829~1904)은 자는 永孝, 호는 惺寰, 본관은 의성이며, 부친은 基銖, 奉化에 거주하였다. 金聲久의 후손으로 柳致明의 문인이다. 1880년 李晩孫, 金錫奎, 金鎭淳 등과 함께 척사만인소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金浩永(1831~1914)은 자는 元直, 호는 日春齋, 본관은 의성이며, 부친은 綱銖이다. 봉화에 거주하였다.
본문에 소개 된 신도비의 주체인 김봉조는 자는 孝伯, 호는 鶴湖, 본관은 豊山이다. 부친은 大賢이다. 1601년 진사에 입격하고, 1613년 增廣試 갑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成均館典籍, 司憲府監察, 丹城縣監, 禮曹正郞, 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