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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이준구(李濬九) 외 4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97.4790-20090831.00152570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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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준구, 이필세, 이우구, 이동욱, 이동영
작성지역 경상북도 예천군
작성시기 1897
형태사항 크기: 22 X 38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허백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7년 이준구(李濬九) 외 4인 서간(書簡)
1897년 4월 7일에 이준구(李濬九) 외 4인이 학호(鶴湖) 김봉조(金奉祖)의 신도비(神道碑)를 세우는 일에 축하를 하고 부조를 보내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상대측의 조상을 섬기는 정성과 효성으로 인해 이루어진 이러한 큰 행사에 자신들도 참석해야하나, 몸이 노쇠하여 가지 못하고 대신 문중 젊은이와 부조금을 보낸다고 하였다. 부조금으로 돈 2냥을 보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897년 4월 7일에 李濬九 외 4인이 鶴湖 金奉祖의 신도비를 세우는 일에 축하와 부조를 보내기 위해 五美洞의 豊山金氏측에 보낸 편지
1897년 4월 7일에 李濬九 외 4인이 鶴湖 金奉祖의 신도비를 세우는 일에 축하와 부조를 보내기 위해 五美洞의 豊山金氏측에 보낸 편지이다.
처음, 우리 斯文을 신령이 도와 先先生의 신도비를 세우게 된 일은 상대 집안의 지극한 誠孝 때문에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일이라고 치하하였다. 이어서 상대측의 안부를 물으며 몹시 그립다고 하였다. 이준구 외 발급인 자신들의 경우는 몸이 노쇠하고 근력도 약해져 상대측 신도비 세우는 행사에 가지 못하는 형편을 알렸고, 이에 약간의 부조와 문중의 젊은이를 대신 보낸다고 하였다. 추록으로 錢文 2냥을 부조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편지는 의성 김씨 문중과 풍산 김씨 문중과의 혼반관계 또는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안동 지역의 여러 명문가 가운데 특히 이 두 문중은 비록 선현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영남 한 지역의 유림으로 큰 선현을 기리는데 아낌없이 지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사회에 유림활동과 문중활동이 거의 일치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여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문중, 마을사나 미시사 분야로 가치가 있는 문서가 될 수 있다.
발급인인 이준구는 본관은 驪州, 자는 良伯, 호는 菊軒이며 거주지는 醴泉이다. 壽職으로 通政大夫에 오른 이력이 있다. 본문에 소개 된 신도비의 주체인 김봉조는 자는 孝伯, 호는 鶴湖, 본관은 豊山이다. 부친은 大賢이다. 1601년 진사에 입격하고, 1613년 增廣試 갑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成均館典籍, 司憲府監察, 丹城縣監, 禮曹正郞, 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7년 이준구(李濬九) 외 4인 서간(書簡)

斯文有相。
先先生墓道竪碣。積歲未遑
之餘。有待今日。而以表幾百年
幽潛之德。非僉尊誠孝之至。如何
敢辦得大事。係是吾林之幸。遠
邇攸均。仍伏問肇夏。
僉候動止萬重。伏溯區區不任。鄙等。
追念世契。合宜奔走晋參於將事
之末。以賀其萬一。而支離齒髮。日澌
敗盡。勢難筋力致禮。玆令若而門少。
替贖逋慢之忱。敢望其俯恕也耶。
餘惟祝
用虔奠安。以副遠誠。不備。伏惟。
丁酉 四月 初七日。李濬九 李弼世 李宇九 李東旭 李東泳 等 再拜。
錢文貳兩汗賻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