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4월 6일, 金常壽, 金鎭淳, 金鎭麒, 金鎭瓛, 金鐘淵, 金益洛 · 金秉植 등이 鶴湖先生 묘도비 건립에 나아가지 못하여 한 사람을 대신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
1897년 4월 6일 金常壽, 金鎭淳, 金鎭麒, 金鎭瓛, 金鐘淵, 金益洛, 金秉植 등이 鶴湖先生 묘도비 건립에 나아가지 못하여 한 사람을 대신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이다.
편지의 첫머리에 학호선생의 묘도비 건립이 가까이 있는데 이것은 本孫의 정성과 노력 때문이니 참으로 축하드린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유생들은 자신들의 당이 빛나고 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상대방의 일상생활이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들이 묘도비 건립에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말한다. 外裔에 해당되는 사람으로서 먼저 마땅히 나아가야 하지만 늙어서 친사를 폐하고 있고, 스스로 힘을 내기 힘들다고 하였다. 자신들을 대신할 사람 한 명을 보내 관례를 면하지 못 할 것이니 선대로부터 맺어 온 교분의 중요함으로 일찍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겠냐고 말하며 부끄럽고 탄식스럽다고 하였다. 능히 대사를 잘 치루어 자신들의 마음에 부응해 주기를 바라며, 이만 편지를 줄인다고 하였다. 추록으로 경용비의 형편을 넉넉하게 조력해야 하나 잔폐한 형국이 보잘 것 없는 것이 매우 심하여 유감스럽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 편지의 수취인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안동 오미 풍산김씨 허백당 집안에 보낸 편지임을 알 수 있다. 발급인은 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학호선생의 외손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김상수(1819~1906)는 본관은 義城이고, 자는 季恒이며, 호는 芝廬이다. 1842년(헌종 8) 향시에 합격하였으며 이후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힘썼다. 1902년(광무 6) 壽職으로 通政大夫가 되었다. 문집으로 『지려유고(芝廬遺稿)』가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