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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정문규(鄭文逵) 외 1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97.4717-20090831.0015257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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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정문규, 정지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97
형태사항 크기: 20.6 X 42.4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허백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7년 정문규(鄭文逵) 외 1인 서간(書簡)
1897년 4월 6일 정문규 외 1인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학호 김봉조 선생의 묘도 입석의 일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게 된 사정을 보낸 편지이다. 먼저 학호 선생의 묘도에 묘비를 세우는 일을 축하하며 자신들은 제사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또 부조금으로 돈을 보낸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97년 4월 6일 정문규(鄭文逵) 외 1인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학호(鶴湖) 김봉조(金奉祖) 선생의 묘도(墓道) 입석(立石)의 일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게 된 사정을 전하면서 돈 2민을 보낸다는 편지
1897년 4월 6일 정문규(鄭文逵) 외 1인이 미상의 수신자에게, 학호(鶴湖) 김봉조(金奉祖) 선생의 묘도(墓道) 입석(立石)의 일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게 된 사정을 전하면서 돈 2민을 보낸다는 편지이다.
백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학호(鶴湖)선생 묘도(墓道) 입석(立石)의 일을 축하하면서 법도대로 일을 마치도록 두 손 모아 기원하였다. 이어 자신 등은 남보다 먼저 달려가야 하지만 마침 제사 일이 겹쳐 몸을 빼낼 틈이 없다고 사정을 전했다. 지금과 옛적을 살펴보면 죄스럽지만 용서해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 일상적인 끝 인사로 마무리 하였다.
학호(鶴湖)는 김봉조(金奉祖, 1572~1630)의 호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백(孝伯)이다. 1601년 진사에 합격하고, 1613년 증광시(增廣試) 갑과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정랑(禮曹正郞)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화왕산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학호집(鶴湖集)』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7년 정문규(鄭文逵) 외 1인 서간(書簡)

孝孫有敏事之誠。
先先生墓道樂石之竪。載擧於百年未遑之
餘。凡在吾林尊慕之地。孰不聳聽改觀。而第以
世契之舊。不能無曠感之私。矧惟
僉座下報先之心。豈曁以起廢發幽之爲斯文
光榮也哉。伏惟肇夏。
僉體萬穆。竣役如式。區區攢仰。世弟等踢蹶趨
晉。豈在恒人之後。而適値祭故仍疊。老少無起
躬之隙。畢竟
將事之席。無此間足迹。俯仰今昔。罪窘字
猶不足用心。縱或恕入於僉諒中。其於私分之
不自安。何哉。唐死唐死。餘不備。伏冀
尊察。
丁酉 四月 初八日。世弟 等 鄭文逵 鄭之慤 拜手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