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4월 7일, 류도협 외 5인이 김봉조선생의 묘도비를 세우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보낸 편지
1897년 4월 7일, 柳道協 ‧ 柳道性 ‧ 柳道誠 ‧ 柳進箕 ‧ 柳道稷 ‧ 柳致榮이 풍산 김씨 문중 어른에게 보낸 편지로서, 鶴湖 金奉祖의 묘도비를 세우고 이를 고하는 의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첫 머리에는 초여름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서 鶴湖 金奉祖 선생의 묘도비를 건립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상대방의 효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도 의식에 참석해야하지만, 모두 몸이 쇠하고 병을 앓고 있어 정성을 드릴 수 없음을 죄송스러워 하고 있다. 대신 일을 도울 집안의 젊은이 몇 명을 보낸다고 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그리고 말미에 의식을 치르는데 보테라고 동전 5냥을 약소하게 보낸다는 말을 덧붙였다.
발급인 가운데 柳道性은 柳台佐의 손자로서, 현재 안동 하회 북촌에 있는 和敬堂를 건립한 인물이다. 그는 조부 문하에서 가학의 가르침을 받아 경사와 제자서에 정통하였다. 1882년(고종 19) 학행으로 假監役官에 천거되었는데 나아가지 않았다. 1902년(광무 6) 通政大夫 秘書院丞을 역임하다가 낙향하였다. 1905년(광무 9)에 단발령이 내려지자 안동 유림대표들과 창의하여, 봉화 닭실(酉谷)의 權世淵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1906년(광무 10) 2차 安東義陣에서 金道和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여러 문중의 힘을 결집시키는 데 노력하다가, 향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다른 발급인인 柳致榮은 안동 하회에 있는 志厓古宅를 건립한 인물이다. 순조대에 通政大夫 秘書院丞를 역임하였다.
이 편지는 피봉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수취인은 알 수 없다. 1897년 4월은 풍산 김씨 문중에서 鶴湖 金奉祖의 묘도비를 건립한 시점으로, 안동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 있는 가문에서 이를 축하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이는 그 가운데 풍산 류씨 문중에서 보낸 편지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