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 9월 25일 族弟 李進榮(1827~1902) 외 2인이 先祖考의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
1892년 9월 25일 族弟 李進榮(1827~1902) 외 2인이 先祖考의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좋은날 선조고의 묘도를 꾸미는 일로 제사를 거행하는데 우리 宗君이 효성을 다하고 여러 執事와 일을 건실하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한해의 농사가 좋지 않은데, 살찐 고기와 향기로운 술을 갖춰 제사를 잘 지낼 방도가 있는지 물었다.
이진영, 李殷榮, 李守榮 등은 炳哀가 말해주어 제사를 지내는 날을 듣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들은 힘을 다해 수레를 타고 달려 나가 일을 봐야 하지만 허둥지둥 늙어가는 사람으로 갈 길이 없고, 아이들도 밖으로 나가 남아있는 사람이 없어 한 사람도 문상을 하러 가지 못했다고 하였다. 자손의 대열에 있는 사람이 길가는 사람만 못하니 만 번 죽어서도 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젊은 사람에게 맡겨 이러한 정황을 알리지만 책임을 때웠다고 할 수 없으니 감히 용서해 주기를 바랄 수 없다고 전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록으로 돈 2량을 보낸다고 하며, 細川族 참봉이 이달 21일 중에 상을 당했다고 들었다고 하였다.
발신자 이진영의 본관은 載寧이고 자는 會可, 호는 墨囈이다. 아버지는 李相休이고 조부는 李海德이다. 柳致明의 문인으로 金興洛, 金道和, 李晩寅 등과 교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