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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류지영(柳芝榮)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87.4717-20090831.00152570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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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지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87
형태사항 크기: 25.9 X 43.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오미 풍산김씨 허백당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7년 류지영(柳芝榮) 서간(書簡)
편지 첫머리에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양동의 평안하다는 소식과 여아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류지영은 손자의 초례를 보기 위해 관아의 식솔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음을 알렸다. 또 다섯째 아들 류회우가 몸이 좋지 않아 첫째인 류승우와 함께 달성에 남겨놓고 왔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아 염려가 많다고 했다. 자신은 손자의 초례를 본 후 부임지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한번 만나주면 기쁠 것이라고 부탁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87년 1월 16일에 中翁 柳芝榮이 손자의 초례를 보기 위해 집으로 왔고, 그 편에 상대방에게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내용의 편지
1887년 1월 16일에 中翁 柳芝榮이 손자의 초례를 보기 위해 집으로 왔고, 그 편에 상대방에게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내용의 편지이다.
근래에 상대방의 履用이 편안하고, 良洞도 평안하며, 딸아이도 아무 탈이 없다는 것을 편지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류지영은 손자의 초례를 보기 위해 관아의 식솔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피로가 심하다고 알렸다. 또 다섯째[柳會佑]가 알 수 없는 증세를 보여 달성에 큰아이[柳昇佑]와 함께 남겨두고 왔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아 집에 있는 사람들의 염려가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손자의 초례를 본 후 부임지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을 한번 만나주면 기쁠 것이라고 청하였다.
편지를 쓴 발급자는 柳芝榮(1828~1896)으로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中翁, 秀翁 등을 사용하며, 호는 志山이다. 1857년에 정시 병과 4위로 급제하였다. 司諫院司諫을 거쳐 安東 府使를 지냈다. 右承旨大司諫을 역임하고 兵曺參議金海 府使 등을 지냈다.
수신자는 피봉이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알 수는 없지만 편지의 내용과 정황을 봐서 추측 할 수 있다. 본문에서 류지영은 자신을 翁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장인 쪽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자녀 중 한명이 오미동 풍산김씨 종손인 金昌燮에게 시집을 갔다. 그래서 김창섭의 집안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
편지를 쓴 연도의 경우 '丁'이라고 표기하여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류지영의 생몰년으로 짐작컨대 丁卯·丁丑·丁亥 가운데 하나 일 것이다. 류지영의 맏아들은 柳昇佑이고, 류승우의 맏아들은 柳會佑이다. 류회우1872년 생으로 15세가 되던 해가 정해년이다. 따라서 '丁'자가 들어간 해는 1887년으로 판단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1차 작성자 : 김순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7년 류지영(柳芝榮) 서간(書簡)

在道得接情墨。尉至
阻餘。而在邇悵熲有倍
無量。卽認春日。
重省履用穩迪。良洞
候種種得聞。女阿一依
無擾。旋切願聞。翁。爲
觀兒孫醮禮率衙眷。
日昨還第餘備轉甚。且
五兒以無何之證。見甚
苦谻。故與長兒落後於
達城地。尙未見還。有多
在家之慮耳。凉路
必在近間矣。幸有來
見之欣耶。轎行亦
有意思矣。無內主張
之地不得若請凉宜
爲之如何。萬客擾不
宣。
元 卄六。 仲翁翁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