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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희전(李羲傳)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78.4777-20090831.00232570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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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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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희전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작성시기 1878
형태사항 크기: 23 X 40
장정: 낱장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가송 영천이씨 농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8년 이희전(李羲傳) 서간(書簡)
1878년 8월 7일, 이희전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조부의 상과 마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긍구당(肯舊堂)에 보내는 편지이다. 이희전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조부의 삼년상을 지냈다고 하였다. 부모님께서는 상을 당한 슬픔에 몸이 많이 상하였다고 하였다. 가을 농사는 풍년인데, 교외의 상황은 기후가 이상하여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추록으로 아이의 관례 때 새 아이가 현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아직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상대방이 징검다리가 되어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78년 8월 7일, 李羲傳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조부의 상과 마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肯舊堂에 보내는 편지
1878년 8월 7일, 李羲傳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조부의 상과 마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肯舊堂에 보내는 편지이다.
만나서 회포를 푸는 것을 기약할 수 없으나 편지 한통을 써서 안부를 여쭙는 것이 특별하고 용이하지 않은데, 또 편지를 보내는 것을 빠트리고 쓰지 못한 것이 언제 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지 못한다면 길가는 사람을 보듯이 하지 않겠냐고 하며 당신의 성대한 도에 용서 받기를 어찌 바라겠냐고 하였다.
新凉에 堂闈의 軆事는 신의 보호를 받으시고, 부모님을 모신 뒤 끝에 당신의 彩履는 편안하며, 자제들도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또 두 집의 상이 겹쳐 마음이 상하였는데 마을사람들의 상황은 어떠한지 물었다. 희전은 조부의 삼년상을 이미 지냈고, 筵几과 彷彿하게 설치하는 것도 우선 國制에 의거하였다고 하였다. 훗날 그때 당시의 禮家의 의견이 없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하늘을 덮어주고 땅이 길러준 부모님의 은혜는 날이 갈수록 멀어져 마치 처음 상을 당한 것과 같은 아픔이라고 하였다. 또 부모님이 상을 당한 슬픔에 몸이 상하여 건강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식구와 堂內의 근황은 편안하다고 하였다.
희전은 상대방에게 우박의 근심이 지난 일이니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나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식을 거느리는 처지에 있어 조리하여 지낼 방도를 계획하였는지 물었다. 자신은 지난해에 겪은 일이라고 하였다.
가을 농사가 풍년의 기운이 있어 시가가 점점 값이 떨어지고, 인심이 정돈된다고 들었다며 태평한 시절 보다 못하지 않다고 하였다. 교외의 상황은 처음에는 풍년이라 할 만하였는데 괴이한 기후에 대비하지 않아 장차 태반을 구제하지 못하여,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浮浦로 가는 인편이 있어 안부 편지를 쓴다고 하였다.
추록으로 아이의 관례 때 새 아이가 현명하다는 소식을 들어 세상사는 재미가 남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시아버지가 되는 방도에 어두워 아직까지 새 아이가 어떠한 모습인지 보지 못하여 한스럽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 번 형님을 뵙는 것이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발신자는 李羲傳(1845~1905)으로 본관은 永川이고, 자는 法正, 호는 茅蹊 이다. 수신자는 肯舊堂으로 聾巖 李賢輔(1467~1555)의 집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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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78년 이희전(李羲傳) 서간(書簡)

肯舊堂 冊室 入納
碧堂從弟謹候狀
謹封
拜敍。非所期。修一書。道寒暄。何足爲奇特。
不容易事。而亦且闕。而未之行者。不知記
在何時。從此而又進之則幾何。其不爲
塗人之視也。每一興懷。自不覺騂然
發汗。其見恕於 盛度亦何敢望耶。
謹未審新凉
堂闈軆事連享神衛
晨昏餘彩履淸穆。胤玉輩亦善茁
否。二家喪威之疊。至今傷痛。而一村
光景。近復何如。幷爲遡往不任之至。
從弟。居然之頃。王父三年之禮。遽已過
行。筵几彷彿之設。姑依國制。少待後日。
此不無當時禮家聚訟。而其於私情
似或少伸然。天地㠅露之恩。日就幽遠。
如新之痛。益復奈何。且親節每緣柴損。
種種多諐。只切一懼。而惟家累及堂內近狀
幷皆依穩。是可爲自慰處耶。貴境
雨雹之患。已屬過去事。今則出塲不遠不必更提。而其在
奉率之地。其所以調度之方。何以爲策也。以弟之去年所
撞着來者。有可仰揣
於 座下今日地耳。仄
聞秋事將有豊稔氣
象。市直漸至減歇。人心
稍稍整頓。無下於泰平
時節。是可慰耳。鄙中
郊野爻象。始謂稍登。而
備無乖候。將至太半。不
可救之地。其嗷嗷之狀。
又未知如何究竟。深覺
慮悶耳。適有浮浦
去便。略修候儀。忙
擾不宣。伏惟。
戊寅八月 七日。從弟 羲傳拜拜。

兒子冠首。新人賢聲。種種入聞。此所謂人世
況味。足爲向人自誇之資。而但全昧爲舅之方。
尙今未見其爲何狀顔目。深爲一恨。而且一番
拜唔高軒。此可以爲堦。然姑未之期。幷覺
悵暗而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