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3월 4일, 의성김씨 가문의 査弟 金鎭林이 재령이씨 가문 사람에게 아내의 육순잔치 등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내용이 편지
1875년 3월 4일에 의성김씨 가문의 査弟 金鎭林이 재령이씨 가문 사람에게 보낸 편지로서, 아내의 육순잔치 등의 근황을 전하는 내용이다.
이 편지는 재령이씨 가문에 전해 오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발신인은 金鎭林(1802~1886)이다. 김진림(1802-1886)은 호가 浪皤, 자가 士恒, 생부는 東園 金羲壽이다. 김진림의 둘째딸인 金又嬌가 李鉉發(1810~1884)의 장자인 李性浩(1839~1923)가 와 혼인하여, 재령이씨 가문과 사돈 관계였다. 뒷면의 피봉과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스스로 功服人이라고 칭하고 있어, 발신자인 김진림은 상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수신인은 '翼洞 棣座 執事', 즉 '익동의 형제분 집사께'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翼洞' 즉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재령이씨 가문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성명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알 수 없다. 다만 편지 내용 가운데 사위와 그쪽으로 시집간 딸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아 사돈인 이현발일 가능성이 크다.
편지의 내용은 가족들의 근황을 알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편지를 보내주셔서 그쪽의 소식을 알 수 있었고, 많은 물품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형제분들의 생활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고, 아드님 형제들도 잘 지내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사위를 만나보려고 했으나 못 만나서 아쉽다는 것, 시집보낸 딸은 잘 처신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는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본인은 종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슬프고 비통한 마음을 '살아갈 재미가 없어 죽은 듯이 누워있고만 싶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편 최근에 아내의 육순잔치를 치렀는데, 방안 가득히 모인 아이들의 축하를 받아 기쁘다는 심정을 말하였다. 그리고 錫兒의 근황을 말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다. 석아는 얼굴 모양이 볼수록 준수하지만, 최근에 종기가 솟아나 괴로워 보여 안타깝다는 것을 말하고, 그가 부모님 문안을 오래 비웠다고 하여 여러 번 나에게 돌아간다고 하기에 만류하였지만, 결국 떠나가 멀리 전별하는데 매우 서운했음을 말하고 편지를 마치고 있다.
추신으로 아우님과 사형의 안부를 물으면서 편지를 각각 보내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