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11월 25일, 李羲傳이 부탁받은 종이와 梧祖의 유고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4년 11월 25일에 李羲傳(1845~1905)이 부탁받은 종이와 梧祖의 유고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편지 내용으로는 막연하게 서로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 이미 오래되었는데 세밑에 그리운 마음이 든다고 하면서 汾川 가에 있으니 이는 진실로 스스로 그만 둘 수 없다고 하였다. 근래에 매우 춥고 바람이 부는 날씨에 상대방의 어머님의 체후와 어머니를 모시며 공부하는 상대방의 근황을 묻고 마을의 여러 사람들의 안부도 아울러 모두 편안한지를 물었다. 이어서 상대방 어머니가 환갑을 지낸 일을 언급하고 이는 자식으로서 큰 경사라고 하면서 축하를 전하였다. 다만 멀리 뿔뿔이 흩어져서 함께 즐거워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하였다. 從弟인 자신은 조부의 기후가 근래에 큰 병을 면하여 그저께 제사에 직접 灌地와 제수 올리는 일을 하셨으니 매우 다행스럽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친의 조섭하는 절도가 추위를 당하여 또 심해져서 장차 八味大劑를 시험하려 했지만 추위가 갑자기 심해져서 조리하기가 매우 어려우니 매우 두렵다고 하였다. 오직 나머지 식구들은 겨우 예전과 같고, 당내도 모두 예전과 같지만 濠兄(濠村의 형)도 묵은 병으로 한창 환약을 복용하여 자주 단란하게 모일 수가 없으니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부탁한 冊紙는 근래에 이 종이는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이렇게 지체되었으니 매번 부끄럽다고 하면서, 부득이 자신이 봉하여 둔 것을 보내지만 物色이 매우 좋지 않으니 이것을 헤아려 받아달라고 하였다. 편지 말미에는 梧祖의 유고를 아울러 봉하여 올린다고 하였다. 추록으로는, 이른바 大事는 또 이번 겨울을 지나쳤으니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혹 內紬(품질이 나쁜 명주)를 구할 만한 곳이 있다면 15~6척을 형편대로 사서 부쳐줄 수 있는지를 묻고, 비록 품질이 열등하더라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혹시 귀중에 장사지내기에 합당한 곳이 있는지도 묻고 있다.
이 편지의 발급자인 이희전은 본관은 永川, 자는 法正, 호는 茅蹊, 부친은 李孝淵, 거주지는 盈德 寧海이다. 유고가 전한다.
편지 중에 언급된 大耋은 이희전의 조부인 李文鉉(1796~1876)으로, 이 당시 78세였다.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