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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백호운(白浩運)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74.0000-20090831.00332570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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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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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백호운, 이현발
작성시기 1874
형태사항 크기: 28 X 5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덕 인량 재령이씨 충효당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4년 백호운(白浩運) 서간(書簡)
1874년 6월 20일에 친척 백호운(白浩運)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계모임에 관한 일, 병곡(柄谷) 놈을 독촉하는 일, 저곡(楮谷)측의 서울행차 소식, 상대에게 빌린 물건을 돌려주는 일 등 여러 가지 사연을 전하고자 약파(藥坡) 이현발(李鉉發)에게 보낸 편지이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874년 6월 20일, 戚末 白浩運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契事에 관한 일, 柄谷漢을 독촉하는 일, 楮谷측의 서울행차 소식, 상대에게 빌린 물건을 돌려주는 일 등 여러 가지 사연을 전하고자 藥坡 李鉉發에게 보낸 편지
1874년 6월 20일에 戚末 白浩運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면서 契事에 관한 일, 柄谷漢을 독촉하는 일, 楮谷측의 서울행차 소식, 상대에게 빌린 물건을 돌려주는 일 등 여러 가지 사연을 전하고자 藥坡 李鉉發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 상대를 기억하는 벗들이 없더라도 본인은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달 상대의 아우와 아들이 차례대로 찾아왔을 적에 상대의 안부를 물었었는데, 이후 장마로 인해 소식이 끊기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더해져 상대를 보고 싶은 회포가 쌓였다고 하였다. 장마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에 상대와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는 궁금한 마음은 동병상련일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난달 상대가 겪은 우환에 관해서도 경과가 어떠할지 궁금해 했다.
자신의 근황으로는, 애초에 귀신같은 행색으로 지내다가 이제야 머물 곳을 정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직 집이 다 지어지지 않아 일이 끊이지 않고, 흉년까지 겹쳐 우환이 많다고 하였다. 다만 조만간 유람 갈 일이 생겨 색다른 경험을 할 것이라 들뜨지만, 고질병 때문에 사람노릇이나 제대로 할지 걱정하였다. 儒契 모임이 임박하였는데, 자신은 그 일을 담당하는 자로서 군자의 절도를 지켜야 하지만 어물쩍거림이 심하여 잘 하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하지만 두 집안 선대의 부형들의 뜻을 이어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柄谷 놈을 독촉하는 문제는 너무 심하게 하면 체면도 상하고 상대도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 하면서 다음 소금 굽는 날짜를 가려 몸소 가서 신칙하기를 부탁했다. 楮谷측의 서울행차는 잘 돌아왔긴 했지만 주간한 일은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는 韓씨, 睦씨 두 재상이 일이 있어서 지금 처리하기 어려우니 일처리를 미루기를 요청했다. 상대에게 빌려 온 물건에 관해서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늦게 부쳐드렸다고 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마지막으로 다음 달 상간에 서로 만날 일이 있을 것 같으니 많은 사연은 그때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발급자 백호운은 생몰이나 이력이 자세하지 않다. 이 편지에서 상대에 대해 자신을 "戚末"로 기재한 것으로 보면 수취인과 친척관계인 것만 알 수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수취인 정보로 '藥坡'를 기재하였는데 이는 李鉉發의 호이다. 이현발(1810~1884)은 본관은 載寧, 자는 台應이며, 부친은 壽一이다. 僉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은 이력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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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74년 백호운(白浩運) 서간(書簡)

藥坡 棣案 執事。

輪囷八尺。來臥萬疊雲林。那能記世間復有知舊乎。世間知舊。誰
復有勞夢於千巖裏者乎。然而寧可曰絶無也。必有伊人矣。往
月賢季與賢胤。次第歷訪。扣詢彼時起居。而馬鬃成霖。聲
息轉隔。且復恭桑故墟獨經。滄海浩劫。周念永懷。每徑情於藥坡
高軒。固知河山不能限人心也。近日者又添潦暑。伏惟
友履體事連保湛相。種種心緖。亦能把定理遣。轉以勉我者自勉乎。
同病時序。何若是倏忽頻回也。曩者劇憂。打疊已久。不必追慰。而
庇下節節次俱穩迪。西神自退。誡慮亦消釋。幷切溯祝不任區區。戚。
當初行色。便同傖荒者。而旣定居止。對山臨水。則似若無憂。而屋
子不完。事未斷了。又復益之以荒歉。固難以山水之樂。減却身世
之憂也。但使守堂之躄。便轉走作三里五里之遊。甚是異事。而顧痼祟。
終始纏繞。夜輒頭骨如割。四末若搗。頻頻劇痛。然而安得復起爲人
哉。況復欃槍示警。農疇告災。新徙無田不農者。何暇憂天下蒼生乎。
浩歎浩歎。熙明戚亦無撓善度否。當頭以契事。扛夯此人者。固知有
固窮之節。必做句斷就緖矣。畢竟又復糊塗太甚。若爾則末稍
恐歸笆籬邊。竊念兩家先父兄遺意。不其自忸乎。意者柄谷
漢頑拒之致。而雖累往累督。與自己物事。事面自他藉而喝罵。言之
者不輕。聽之者不應。大憝而另念矣。次揀煮鹽日子。期於躬往。刷了之
意。飭之勉之如何。楮谷西行。聞已利還。而本事頭邊。莫知何如。蓋於
此事。余每以理而推。必無遲延之端爲言。然到今更思。
則韓睦兩相之故。有所難處。而更復遷就也。然豈能久
屈耶。借來之物。固當趁用回完。而頑僮不告而逋。則廚下
更無代使者。苦竢故里人來。而以雨以農。昨始晩到。故玆
付呈。然尊史之怒譴。勢所必至。其爲愧慊。那可勝謝。
一面之期。似在來月間。都留。不備狀。
甲戌 六月 二十日。戚末 白浩運 二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