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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1+KSM-XF.1873.4717-20090831.0084257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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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3
형태사항 크기: 21 X 7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도산 진성이씨 초초암종택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3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1873년 7월 16일 이만각이 상대방에게, 중문공의 대상을 위로하면서, 손자 탄생과 정촌옹의 관직 제수에 대한 축하와 자신의 근황 등을 전하는 편지이다.
1차 작성자 : 김순주

상세정보

1873년 7월 16일 重外弟 李晩慤이 중문공의 대상을 위로하면서, 손자 탄생과 靜村翁의 관직 제수에 대한 축하와 자신의 근황 등을 疏戶에 전하는 편지
1873년 7월 16일 重外弟 李晩慤이 疏戶에, 중문공의 대상을 위로하면서, 손자 탄생과 靜村翁의 관직 제수에 대한 축하와 자신의 근황 등을 전하는 편지이다.
7월 8일에 편지를 받았는데 방문한다는 말이 있어서 손꼽아 기다렸지만 허사가 되었지만 만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가을을 맞은 건강을 묻고, 仲父公의 祥日이 지난 것을 위로하며, 손자를 안게 된 기쁨과 정촌옹이 가감역관에 임명된 것을 축하하였다. 자신은 60년 만에 부자간에 권면하는 즐거움이 있으나 아이의 隱疾이 날마다 더욱 심해져 걱정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元佐[류지호]는 지금 이미 성에 들어간 것이 오래되었다고 전하면서, 정재 류치명이 죽은 뒤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 탄식했는데, 지금은 의지할 곳이 있으니 축하할 일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북협의 행차를 도모하길 바라면서 끝인사를 덧붙여 마무리 하였다.
이문직(1809~1877)의 본관은 韓山, 지는 法祖, 호가 靜村이다. 류치명의 문인으로 監役을 지냈고 저서로 『靜村集』이 있다. 柳止鎬(1825~1904)의 본관은 全州, 자는 元佐, 호는 洗山이다. 류치명의 아들로 1873년에 假監役에 제수되었으며, 연천군수, 돈녕도정 등을 역임하였고, 저서로 『洗山集』이 있다.
1차 작성자 : 정재구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3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疏戶 令座下 下執事。

七月八日。凝川人傳致
令翰。積月阻閡中。得此
眄睞。已是傾倒。書中又有
北行歷訪之語。蓋自是無日不
僂之竢期。上手加額。而竟爾奉
虛。然尙不能無餘望。以小白秋景。
不恨其失之晩也。未知肯踐前約
否。每自愧爲浪客而還。不能不二三
五分。或可準信也。比來凉意頓
緊。伏惟
令體事。一向衛重。
仲父公祥日奄過。纓帶表哀之
物。已先去矣。奉深悲愴。抱孫之
喜。賀已晩矣。老牛不獨䑛己犢。所
以又切馳情。靜村翁一命。亦
喜公議之尙不泯也。族姪東京歸
路。謂有一拜。且言其風采儼然。
一朝貴相。爲之遙賀萬萬。重外弟。
六十年來。將有父子之樂。兒亦祥
馴。可入矩度。早暮誘進之間。不
放作滋況。而但所有隱疾。日益增加。
神色爲之戌削。見者皆疑非故我。
似此不已。終必有究竟。朝暮常
理。歎亦何爲。而一子成就未易期。
是爲所自懼耳。元佐今已入城久
矣。師門之棄後學。而每歎其後
承之寂寞。今則百事皆當有倚
靠。政所相賀也。北行。幸另圖之
也。弼令亦苦企云矣。去伻立促。
未暇鋪排。只此不備。伏惟
令下照。謹再拜上候。
癸酉 中元後一日。重外弟 李晩慤 再拜。